드레스 코드
드레스 코드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06.1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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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맨인블랙>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외계인을 관리하는 지구인의 조직 이야기다. 2탄, 3탄이 나올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 조직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검은 슈트를 입고 검정 넥타이를 맨다. 그래서 ‘맨 인 블랙’(man in black)이다. <맨인블랙>은 우리말로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로 영어의 관용구다. <빨간 구두 아가씨>나 <검은 장갑 낀 손> 정도의 제목으로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는 ‘맨 인 엘로우’(man in yellow)라고 하면 된다. 영화는 거기에다 검은 선글라스도 필수품으로 나온다. 외계인의 기억을 지우는 불빛을 가려주는 용도의 선글라스다.

‘어떤 옷을 입고 오라’는 요청을 드레스코드(dress code)라고 한다. 나름의 예절로 서로 차려 입고 즐기자는 뜻이다. 턱시도를 입을 자리가 있고, 콤비를 걸쳐야 할 때가 있다. 미국인들이 옷을 마구 입는 것 같지만 드레스코드를 엄격히 지키는 자리도 많다. 연회(banquet)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공부하는 학회지만 마지막 연회용 옷은 신경 써야 한다. 하다못해 골프클럽에서도 화사하게 재킷을 걸치는 것으로 드레스 코드를 삼기도 한다. 좋은 음식점에서는 재킷을 빌려주기도 한다.

드레스코드는 서로 보기 좋자는 데 그 뜻이 있다. 다같이 차려 입고 그 자리에 있으면 품위도 있고 동질감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재미 때문에 가족모임에서 드레스코드를 주장해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검은 옷, 여자는 드레스를 입고 한 번 놀아보자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한 번도 실행하지 못했다.

일전에 결혼식에 가는데 입을 옷이 없었다. 그냥 옛날 양복을 입고 가려했는데, 나를 설득하는 말이 ‘입는 것도 부조’라는 이야기였다. 돈으로만 부조(扶助)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입어주는 것도 부조라는 뜻이다. 결혼식이야 사진도 찍어야 하니 주위 배경이 엉망이면 안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은 그런 대로 드레스코드가 지켜지는 공간이다.

다들 가볍게 입었는데 나만 정장을 해도 뻘줌해진다. 이른바 오버드레스드(overdressed)했기 때문이다. 타이라도 풀고 와이셔츠라도 걷어야 분위기를 따라간다.

중국여인들이 입는 치파오(旗袍)라는 것이 있다. 긴 치맛자락 옆을 터서 여간 농염한 것이 아니다. 미니스커트보다 더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미니스커트가 반바지를 입은 느낌이라면 치파오는 드레스 옆을 대놓고 자른 것이기 때문이다. 치파오에도 원리가 있다. 다리를 너무 드러내지 않으면 둔하고, 다리를 지나치게 드러내면 천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높이를 찾는 것이 치파오의 미학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녀의 차이다. 남자는 입어야 정장이 되고, 여자는 벗어야 정장이 되기 때문이다. 덥더라도 남자는 걸쳐야 격식이 있고, 춥더라도 여자는 벗어야 정장이 된다. 왜 그럴까? 왜 남성은 입어야 예의고 여성은 벗어야 예의일까? 서구식 기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적 감수성에서 이를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남자의 육체는 더럽고, 여자의 육체는 아름다워서 그런가? 내 생각에는 남자는 동물성을 감춰야 예의고, 예자는 동물성을 드러내야 예의라서 그런 것 같다. 남자가 반바지에 털을 드러내고 다니면 볼상 사납고, 여자가 살긋한 어깨선을 드러내지 않으면 지루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여름이야말로 여인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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