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사(雜事)는 가라
잡사(雜事)는 가라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6.10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수록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대부분 이해관계로 얽히지만, 친구들도 출세한 사람에게 꼬이는 게 세상인심이다. 세속적 성공이 잘사는 삶과 전혀 동일시될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불을 보고 무작정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성공을 향해 질주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회의가 들게 되고, 그럴 때면 꿈꾸는 게 바로 전원생활이다. 그러나 전원생활을 한다 해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세속적인 욕망을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전원생활 또한 만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농사지으며 사는 생활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알았던 도연명(陶淵明) 같은 사람만이 느끼는 소회(所懷)는 어떠했을까?

◈ 시골에 돌아가다2(歸園田居2)

野外罕人事(야외한인사) : 들 밖이라 번다한 사람 일 드물고

窮巷寡輪앙(궁항과륜앙) : 외진 마을이라 수레가 다니지 않는다

白日掩荊扉(백일엄형비) : 대낮에도 사립문 닫혀있고

虛室절塵想(허실절진상) : 빈 방에서는 속세 생각 끊어졌다

時復墟里人(시복허리인) : 때때로 마을 사람 돌아오고

披草共來往(피초공래왕) : 풀을 헤치고 서로 오고간다

相見無雜言(상견무잡언) : 서로 만나면 잡된 말 하지 않고

但道桑麻長(단도상마장) : 뽕과 마 농사만 이야기 한다

桑麻日已長(상마일이장) : 뽕과 마는 날마다 자라나고

我土日已廣(아토일이광) : 내가 일군 땅도 날마다 넓어진다

※ 시인이 사는 공간은 시골(園田)이며, 들 밖(野外)이기도 하며, 동시에 외진 마을(窮巷)이다. 이러한 공간의 특징은 속세의 번다한 인간잡사(人間雜事)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인간잡사는 공간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리 심심산골에 살더라도 사람 간의 왕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인간잡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공간적으로 사람들과 멀어지면 자연히 사람 왕래가 줄어들 소지는 많이 있다 할 것이다.

시인은 아예 수레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 거처를 정하였다. 불편해서라도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 벌건 대낮에도 사립문을 닫은 채로 있다. 사람을 못 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방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는 텅 빈 방이다. 빈 것은 방만이 아니다. 시인의 머릿속도 텅 비었다. 속세의 번다한 생각들과 절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거나 말을 하지 않거나 하지는 않는다.

시인이 만나는 사람들 역시 세속과는 거리가 먼 마을의 사람들이다. 만나는 것도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만나는 게 아니라 풀 섶을 헤치고 다니다 우연히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뽕과 마의 농사에 관한 것뿐으로, 세상잡사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무욕(無慾)과 무잡(無雜)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리라. 그런 가운데 뽕과 마는 날로 자라고, 시인이 일군 땅은 날로 넓어지는데, 이것은 무욕(無慾)과 무잡(無雜)의 결실인 셈이다.

욕심 없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예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필요한 인간잡사(人間雜事)로부터 벗어나 사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다. 잡사(雜事)여 가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