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칼럼
참교육칼럼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5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생생활에 학생인권은 없다
박을석(청주 경덕초교)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하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은 체벌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어느 더운 날, 반 전체가 운동장에서 주먹 쥐고 엎드려 엉덩이를 맞던 기억. 한 발달장애 아이가 숙제를 안 해와 매를 맞게 되었는데, 바지 속에 책을 집어넣은 탓으로 아주 큰 소리가 났고, 그 담임선생은 처음엔 씩 웃더니, 곧 표변하여 책을 끄집어 낸 뒤 개잡듯() 했던 기억 등등.

최근 한 학생이 5분 지각을 하였고 머리카락이 좀 길다 해서 200대나 매질한 교사가 있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매 맞은 아이도 여럿이었고, 주위의 만류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대나 때렸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는 기억속의 체벌 선생님들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적당히 매질하시고 용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체벌사건의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해당교사가 정신질환자라거니,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성격장애자라거니, 사립학교에서 이사장과 학교장이 모두 형제간이라 전혀 체벌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거니, 군사주의 폭력문화의 말단이라거니.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공연히, 심지어 의도적으로 체벌이 조장되는, 입시체제에 의한 성적지상주의를 원인으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성적향상과 학습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면 체벌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때려도 좋다, 아니 때려서 점수를 올려달라는 소위 '성적체벌'은 일상화되었다. 학원에서도 체벌은 이루어진다. 어떤 학원은 입학규정으로 체벌을 못박고 있다. 체벌을 하는 학원에 학생이 더 몰리기도 하고 학부모가 원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성적지상주의에 물든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폭력 - 그러나 이러한 '성적체벌'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면죄부가 주어진다.

입시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우리나라 학생의 학교내외의 생활 속에서 인권은 없다. 학생들은 인격적 주체로서 인권을 존중받기 보다는 명문대 입학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학습을 혹사당하며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견뎌야 한다.

우리나라가 1991년 가입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는 어떠한 종류의 체벌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아동은 18세 미만의 사람임.) 그리고 이를 위하여 입법적, 행정적, 사회적 및 교육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두 차례 이행보고서를 제출하였으나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잇달아 체벌금지를 강력하게 권고하였다.

국내 일반법보다 상위에 있는 국제협약을 4반세기 동안 이행하고 있지 않은 불법적 정부를 탓할 것인가 체벌금지, 자치활동보장 등을 내용으로 한 학생인권법안을 잠재우고 있는 국회를 탓할 것인가 이런 정부와 국회를 용인하고, 우리 아이의 성적을 위해서라면 아이들 인권은 적당히 무시해도 좋다는 학부모와 이 사회를 규탄할 것인가

전국을 뒤흔든 체벌폭력에 대해 해당교사를 파면하고, 학교장을 정직시키고, 국민 대다수가 원한다면 체벌금지법을 만들겠다는 정도의 조치로는 부족하다. 학생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총체적이고 근원적인 반성, 좀더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