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길을 걸으며
마실 길을 걸으며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3.06.0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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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지난 휴관일 직원연수 목적으로 부안 변산 마실길 제3코스를 걸었다. 성천마을에서부터 시작하여 반월마을, 적벽강, 수성당, 채석강까지 약 6㎞ 구간이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이번 기회에 마음을 풀고 느슨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바쁜 일과에 쫓겨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날들은 사람을 건조하게 한다. 마음을 정화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업무에 충실해지려는 각오는 마음뿐이지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서로가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보다 보니 전 직원이 한자리에 앉아서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하였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자유롭고 편안 복장으로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고 나타났다.

나라의 안녕을 위하여 군인들이 수 없이 오고 갔을 해안선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간간이 남아있는 방공호와 철조망은 아직도 아물지 못한 분단의 아픈 상처이다.

철조망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발길을 재촉하여 적벽강에 도착하였다.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한 적벽강은 소동파 시인이 즐겨 찾았다는 중국의 적벽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보니 눈앞에 펼쳐진 경관 모두가 수려하다. 일행은 적벽강 해안보다는 수성당으로 오르는 언덕의 노란 유채꽃에 모두가 혼이 빼앗겨 사진 찍기에 바쁘다.

나는 적벽강 해안으로 내려갔다. 햇살은 투명한 바다의 속살을 어루만지고 있다. 잠시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몽돌이 만져진다. 서로서로 부딪치며 파도에 흔들리는 몽돌. 얼마나 많은 세월을 파도에 온몸을 맡겼기에 이렇게 몽글몽글해졌을까? 나는 지금쯤 얼마만큼 둥그레졌을까? 바위 틈새에 돋아난 해초는 햇살을 머금어 더욱 푸르다.

일행을 뒤쫓아 수성당을 향했다. 수성당은 개양할미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개양할미는 우리나라 각 도에 한 명씩 딸을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의 깊이를 재어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전설이 있다. 안타깝게도 개양할미 신전은 꼭꼭 잠겨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개양할미를 뒤로 하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채석강은 이태백이 배를 타고 노닐다 술에 취하여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많은 고서를 겹겹이 쌓아놓은 것 같은 퇴적암층에 슬며시 나의 흔적을 내려놓고 이태백의 시를 읊어 보았다.

汎此忘憂物 범차망우물 온갖 근심 술잔에 띄워라

遠我遺世情 원아유세정 멀리 간다고 정 잊어지나

一觴雖獨進 일상수독진 홀로 잔 기울이다 취하면

杯盡壺自傾 배진호자경 빈 술병 껴안고 잠들리니

이태백도 혼자라는 외로움을 술로 달래려 하였다. 그동안 조심스러워 다가가지 못했던 직원들과 길옆에 피어난 꽃 이름을 물어보며 선입견도 풀었고 서먹했던 사이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틈을 보여 주는 것이다. 틈이 없다면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상대가 틈을 안 준다고만 생각한다.

내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문을 연다면 많은 사람이 내 안에 들어와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고 나를 이해할 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마실길 걷기 직원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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