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 민은숙 <괴산동인초 사서교사>
  • 승인 2013.05.3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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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민은숙 <괴산동인초 사서교사>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보면서, 박지성의 발을 보면서 한 분야에서의 최고는 역시 다르다는 감탄을 한다. 존경스럽다. 그만큼 최고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다. 이렇게 드러난 여러 유명 장인들 외에도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숨겨진 장인들이 있다. 20년 동안 한 곳에서 대장장이 일을 해 평생 쓸 수 있는 칼을 만드는 장인이라던가, 시계 수리 분야에서 영국의 유명 브랜드 장인들도 배우러 온다는 장인 등이 그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책에서도 이런 장인이 존재한다. 책 제본 기술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세 히데코의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소개하고 싶다.

프랑스어로는 를리외르. 우리 말로 굳이 옮기자면 책 제본 기술자 라고 해야 할까 싶다. 필사본, 낱장의 그림, 인쇄된 책 등을 분해하여 보수한 뒤 다시 꿰매고 책 내용에 맞게 표지를 꾸미는 직업을 말한다. 중세 유럽에는 수도승이, 16세기 이후에는 왕립도서관 소속인 를리외르가 제본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들은 책 내용을 필사체로 예쁘게 꾸민다던가, 책 외양을 멋드러진 가죽을 사용한 장정으로 만든다던가, 금박에 압인을 사용해 책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든 예술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책의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책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낸 예술가였으니 말이다.

책을 열어보자. 소피라는 소녀가 있다. 소피는 식물을 좋아해서 식물도감을 보며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소녀다. 소피의 식물도감은 너무 많이 봐서 종이가 흩어져 망가져 버렸다. 새 식물도감을 사기보다는 책을 고치고 싶었던 소피는 책 의사 선생님인 를리외르 아저씨에게 책을 고치러 가게 된다. 를리외르 아저씨는 소피의 책을 다시 고쳐 주고, 소피는 책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어찌 보면 를리외르를 소개한 평범한 책일 수 있겠다. 책 표지를 보고 대체 이건 뭔가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섬세하게 책 제본 공정을 스케치해서 공방을 엿보는 즐거움을 준다. 소피의 책을 고쳐주면서 책 제작 과정을 살피는 재미도 있다.

소피와 를리외르 아저씨의 대화를 들으며 를리외르 아저씨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내 책이 소중히 고쳐지고, 존중받는 느낌이 좋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마음에 자기의 소중한 책 한 권은 있지 않은가. 그 책이 소피의 식물도감처럼 소중히 고쳐진다면 어떨까. 소피처럼 나도 책을 꼭 끌어안지 않을까.

글도 좋지만, 책의 삽화도 수채화로 그려낸 유럽풍의 배경이라서 하나의 화집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세 히데코의 다른 작품인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의 주인공인 사에라와 이 책의 주인공 소피가 성장해서 둘이 아마 만났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세 히데코의 책을 읽은 사람만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또 ‘나의 형, 빈센트’와 앞으로 한국에 번역 출간될‘화가’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어린아이와 함께 읽기보다 어른인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 같은 책이다. 다만 속표지의 를리외르 아저씨의 손 스케치가 차라리 겉표지로 되면 좋았을텐데 라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발레리나의 발처럼, 나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손을 존경하고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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