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시계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3.05.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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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아파트 담장을 기어오르는 붉은 장미를 보아도 코끝을 스치는 아카시아의 향내에서도 그리운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5월이다.

어쩌다 새벽녘에 잠이 깨는 날이면 아련하게 새벽을 알리는 고향집 앞산의 절에서 울리던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내 마음은 여학교 시절의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그 종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지 40여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내 귓가에는 여전히 종소리를 놓칠까 잠을 못 주무시고 뒤척거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0여리나 떨어진 충주의 중학교에 입학한 후 새벽 6시 기차를 타야 학교에 갈 수 있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새벽 4시쯤에 울리는 절의 종소리를 듣고는 아침 준비를 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모두가 가난하여 시계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사발시계(탁상시계)는 자주 고장이 나서 시계에 의존하기보다 낮에는 문창호지를 붙인 방문의 문살에 비치는 해의 그림자로 때를 대충 알았고 밤에는 달의 위치나 절, 교회 등의 종소리로 때를 짐작하였다.

우리 집도 형편이 좋지 않아 시계라고는 한 개도 없었기에 어머니는 기차통학을 하는 나의 아침밥을 지으시기 위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거의 밤잠을 주무시지 못했다. 그러나 시계가 없어도 어머니가 늦잠을 주무셔서 아침을 굶고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6년 동안 기차를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어머니들은 다 훌륭하시지만 특히 내 어머니는 이 세상 어떤 어머니보다 훌륭한 분이었다고 생각하며 늘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도 시계를 차지 못했다. 형편이 괜찮은 친구들이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게 부러워 집안 언니가 멋으로 차고 다니던 고장 난 손목시계를 며칠 빌려 차고 친구들이 시간을 물을까 봐 옷소매 깊숙이 시계를 차고 몰래 들여다보며 그래도 시계를 찼다는 생각에 흐뭇했던 기억에 혼자 소리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시계를 교사 발령을 받고도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사서 찰 수 있었고 어머니에게도 적금을 부어 목돈을 마련해 시계를 사드려 어머니는 무척이나 기뻐하셨고 자랑스럽게 시계를 차고 다니셨다.

지금 우리 집에는 그토록 구하기 어렵던 시계를 화장실 벽에도 걸었다. 식구들 모두 손목시계도 있고 방마다 시계가 있으나 시계의 소중함이나 귀하다는 생각은 않는 것 같다.

이제 보석상의 진열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시계는 시장통 좌판에서도 싸게 팔고 있어 돈이 없어 시계를 사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고가의 시계는 상상도 못 할만큼 비싸지만 하나의 사치품이 아니고 그저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면 아이들 장난감만큼이나 쉽게 구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국민 대부분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통해 시간을 알 수 있으니 점점 시계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흔한 시계를 볼 때마다 나는 시계가 없어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찌 어머니가 시계 때문에만 고생을 하셨으랴. 평생 딸 하나를 위해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신 어머니에게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늘 나라로 떠나시게 한 나는 늘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시계방을 지나도, 예쁜 옷집을 지나도, 맛있는 음식점을 지나도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아픈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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