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비빔밥
  • 이재성 <수필가>
  • 승인 2013.05.2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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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성 <수필가>

나는 비빔밥을 사시사철 좋아한다. 특히 여름철에 먹는 비빔밥은 일미중의 일미라 할 수 있다. 빨간 고추장과 녹색채소의 색감이 어우러진 그것은 보는 것 만으로도 군침이 솟는다. 매콤한 비빔밥에 오이 냉국까지 한 사발 곁들이고 나면 포만감에 행복하고 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비빔밥은 잡곡밥이라야 제격이다. 보리, 감자, 콩, 팥 정도는 기본으로 섞여야 구수한 맛이 난다. 나물은 지천에 널려있는 쌔똥(왕 고들빼기) 몇 잎과 텃밭의 연한 상추, 겉절이 열무김치만 있어도 족하다. 혹시 먹다 남겨놓은 오이 김치나 콩나물 무침이 있으면 설거지 하는 셈치고 넣어도 무방하다. 가짓수가 많을수록 독특한 맛을 낼 수 있어 좋다.

어려서는 큰 바가지에다 비벼 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세상이니 대접 보다는 조금 넓은 양푼이면 좋겠다. 밥은 반공기 정도만 우선 넣고 남겨 두는 게 좋다. 나물 욕심이 생겨 이것 저것 넣고 비비다 보면 짜거나 매울 때가 있으니 남겨 놓은 반 공기는 간을 맞춰 가며 그때 넣으면 된다. 야채는 손으로 대충 찢어서 넉넉하게 넣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여름철 비빔밥은 풋풋한 야채 맛으로 먹기 때문이다. 된장찌개와 고추장을 한 숟가락 푹 퍼 넣고 감자를 으깨면서 썩썩 비비면 매콤하며 차분차분한 맛이 입안 가득하여 온 몸으로 퍼진다.

이렇게 해서 먹는 비빔밥은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고 보약이 따로 없지 싶다. 먹는 모습이 남 보기에 좀 게걸스럽게 보이는 게 흠이랄 수도 있겠으나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며 복 받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어릴 때부터 줄곧 좋아했던 이 음식을 한때는 점잖지 못한 음식인 것 같아 가슴 졸인 적이 있다. 한창 멋 부리고 다니던 총각 시절에 그랬다. 서양 문물이라면 무엇이든 선망하던 때다. 첩첩 산골 촌뜨기의 눈에는 시답잖은 햄버거나 토스트 조각에 씁쓰레한 커피 잔을 기울여야 폼이 나고 인간 구실을 하는 듯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서양음식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사무적인가. 각자 정해진 그릇에 담아 네 것 내 것이 분명하니 주고 받을 것도 없다. 그마저도 이 시대에 와서는 영양의 불균형 식품이고 비만의 주범이라 하여 경계의 대상으로 수모를 겪으니 우리의 비빔밥만 못한 것 같다.

밥상 앞에서 정 난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음식 문화다. 뚝배기 한 그릇에 스스럼 없이 수저를 적시기도 하고 모자라면 덜어 주고 권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을 식구라고 하는 것이다. 한 그릇에 같이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비빔밥 같은 식구들이다. 아이들과 어쩌다 모이면 만져야 하고 비벼야 산다. 넓은 거실이 있고 각자의 방이 있음에도 반 평쯤 되는 좁은 공간에 오글오글 모여 발을 부딪치고 손을 만지고 어깨, 얼굴을 쓰다듬으며 지낸다. 그것도 시들하다 싶으면 한바탕 끌어 안고 뒹굴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다 큰 자식들을 품 안에 끼고 사는 것 같아 이상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지들 앞가림은 알아서 잘 해나가고 있으니 마마보이, 파파걸은 아닌 것 같다

가끔은 시집, 장가갈 나이가 된 자식들이 지들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며 한마디씩 할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식구들의 정이란 것이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각자 자기들 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햄버거나 토스트와 같이 겉도는 것 같아서 싫다.

갖가지 개성 있는 재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고 비빔밥의 독특한 맛을 이뤄 내 듯 우리 사회도 어우러지고 뭉쳐져서 사람 속에서 사람 사는 멋과 맛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잘 못했다. 아이들을 한 두셋은 더 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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