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륵
어머니의 그륵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5.15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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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륵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 세상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만큼 푸근해지는 말이 있을까. 돌아서서 가만히 불러봐도 미소가 고여오는 말이다. 어머니의 말씀 역시 어머니를 닮았다. 투박한 말투는 따스한 위로가 되고, 다정한 그리움이 된다. 한뼘 한뼘 마디게 당신 몸으로 터특한 말들이 어찌 사전에 박제된 말의 무게와 같을 수 있겠는가. 말에서 엄마 내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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