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는 풍경
봄이 가는 풍경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5.1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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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우문(愚問)이라도 좋다. 봄은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가? 춘삼월이라 했으니 3월에 왔다가 5월에 가지 않느냐고 대답한다면, 이는 우답(愚答)이 될 것이다. 이보다는 차라리 꽃이 필 때 왔다가 꽃이 질 때 간다고 대답하면 한층 운치 있긴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물음에는 본디 정답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봄은 오지도 가지도 않지만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봄을 맞고 봄을 보낸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봄이 가는 모습을 독특한 취향으로 그리고 있다.

◈ 곡강 연못(曲江)

一片花飛減却春(일편화비감각춘)

한 조각 꽃잎 날아 떨어져도 오히려 봄이지만

風飄萬點正愁人(풍표만점정수인)

바람에 만 점 꽃잎 날리니 정말로 시름일세

且看欲盡花經眼(차간욕진화경안)

잠깐 볼지니 지려는 모습 바라보니 꽃잎 눈을 스치고

莫厭傷多酒入脣(막염상다주입순)

서글픔 많아지는 것 마다하지 않으니 술이 입술에 드네

江上小堂巢翡翠(강상소당소비취)

연못가의 작은 집에 비취새 둥지 틀고

苑邊高塚臥麒麟(원변고총와기린)

궁원 곁 높은 무덤에 기린 상이 누워있다

細推物理須行樂(세추물리수행락)

만물의 이치 자세히 미루어 즐거움을 누려야지

何用浮名絆此身(하용부명반차신)

어찌 헛된 이름으로 내 몸을 묶어둘까

※ 아무리 근수 재기를 상시로 하는 중국인들이라지만, 두보(杜甫)만큼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보(杜甫)는 봄을 근수로 쟀기 때문이다. 시인은 꽃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서 봄의 상태를 알아챘던 것이다.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 공중을 날면(飛) 그만큼 봄의 무게는 줄어들고(減却), 줄어든 무게만큼 봄은 멀어진다고 느낀다. 참으로 예민한 촉수(觸手)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거센 바람에 만 조각이나 되는 꽃잎이 한꺼번에 떨어져 버려 봄의 무게는 현격히 줄어들었으니 정녕 고민이 아닐 수 없다(愁人). 시인은 봄이 떠나려 함을 직감하고, 이제 곧 지려고(欲盡) 하는 꽃잎을 잠깐 응시한다. 순간 꽃잎이 눈앞을 스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인은 봄을 보내는 슬픔이 커지는 것(傷多)을 마다하지 않겠다고(勿厭)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자 술이 입술로 들어온다. 꽃이 지는 것은 봄의 무게가 그만큼 줄어들고, 반대로 봄이 감을 슬퍼하는 마음은 더욱 커진다는 시인의 감수성(感受性)은 독특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봄을 보내는 애상(哀傷)에 젖어 술을 기울이던 시인은 문득 시선을 자연으로 돌린다. 곡강(曲江)은 장안(長安) 동남쪽에 위치한 연못으로 한(漢) 무제(武帝)의 궁원(宮苑)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연못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작은 집에 비취(翡翠) 새가 둥지를 틀었다. 한(漢) 무제(武帝)의 궁원(宮苑)은 옛 영화(榮華)는 간 데 없고, 이젠 무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린(麒麟)은 무덤 앞에 세워 놓은 석물(石物)이다. 자연의 무심함과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무상감(無常感)이 시인을 감싼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시인은 문득 깨닫는다. 자연의 이치를 좇아 사는 데 참다운 즐거움이 있다는 것, 그리고 벼슬살이 같은 세상사에 속박되어 사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봄이 오는 것도, 가는 것도 그저 자연일 뿐이다. 일희일비(一喜一悲)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가벼움이지만, 자연을 알고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요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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