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층차
거짓말의 층차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05.0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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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어디까지가 거짓말인가? 살면서 많은 거짓을 만났다. 그러면서 거짓의 층차를 생각하게 됐다. 거짓1에서 거짓10까지 등급을 나누어보는 것이다.

순한 거짓말부터 저질 거짓말까지, 양성 거짓말에서 악성 거짓말까지 떠오른다. 더불어 나의 거짓말은 어디에 속하는가를 묻는다.

독일 기자 위르겐 슈미더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40일간 살아보기로 했다. 그 기자는 최근에도 그런 식의 기획기사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는데, 그의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40일 동안 8000번의 거짓말을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하루에 200번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직한 소득신고로 세금폭탄도 맞고, 신자인 부모 앞에서 성경의 말을 부정해야 했다. 친구끼리 카드를 치다가 자기의 패를 정직하게 말해야 하는 경우도 당했지만, 승률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의 참말을 거짓말로 여겼던 것이다.

‘아름다우십니다.’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라도 듣기 좋단다. 못생겼다고 했다가는 맞아죽기 십상이다. 여자 친구에게서 차이지 않으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

‘돈 없어.’ 없기는 뭐가 없어, 마음이 없을 뿐이다. 비상금은 챙겨놓고 돈이 없다고 한다. 돈이라도 꿔달라면 일단 없다고 하는 것을 상책으로 여긴다.

‘밑지는 장사요.’ 밑지는 장사는 없다.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한다. 하다못해 돈을 돌리려는 떨이도 밑지지 않으려는 수단이다.

‘이깁니다.’ 운동선수들 모두 승리를 확신한다. 아무리 승패가 확률로 정해졌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변수는 있는 법이라고 위안하며 승리를 확신한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그래도 스스로 확신을 위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다보면 자신감도 생긴다.

이 정도면 좋은 거짓말에 속한다. 그러나 나쁜 거짓말도 많다.

층차1. 없던 일을 만드는 경우. 그런 일이 없는 데도 그랬다고 한다. 속이려고 작정한다. 요즘은 사기 자체를 미끼로 사기를 치기도 한다. 전문사기다.

층차2. 있긴 있었는데 엉뚱하게 이야기를 만든다. 비슷한 일은 있었다. 그러나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데도 그런 식으로 몰고 나간다. 정치가 여기에 속할 때가 많다.

층차3. 아예 침묵한다. 어떻게 생각하냐거나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물을 때,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면 싸움이 되거나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내가 잘 하는 거짓말은 3번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거짓말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셨기 때문인지, 거짓말이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특히 평화를 위해서는 침묵이 제일일 때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의 침묵을 인정으로 받아들여 손해 보지 않는 것 같다.

1번 거짓말이야 전문적이라서 피하지 않기 쉽지 않다. 사기꾼은 인간의 심성을 잘 알아 그것을 건드린다. 돈 욕심, 아이에 대한 사랑, 권력 앞에서의 쪼그라듬,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미끼로 사람을 낚으니 참 어쩔 수 없다. 사기치고자 덤비는 이들에게 넘어가지 않기는 정말 힘들다.

그러나 정말 나쁜 것은 2번 거짓말이다.

왜냐 참과 거짓을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2번 거짓말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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