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처럼 가벼운 이야기
솜털처럼 가벼운 이야기
  •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3.05.0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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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늦은 밤 무심천 산책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느 날 둥근 달이 환하게 떠있다. 한참을 보면 달도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고 가슴 한켠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을 때면 달에게 속내를 드러내고 투정을 부린다. 보름달에게는 이루고 싶은 소망을 슬쩍 내비치기도 한다. 달은 그렇게 한줄기 빛이 되고 위로가 되며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도서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신경숙 저)’는 저자인 신경숙씨가 전작 ‘엄마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는 무거움, 먹먹함에 비하면 솜털처럼 가볍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따뜻하게 보여준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달빛처럼 반짝이는 스물여섯가지 짧은 소설이며, 초승달, 반달, 보름달, 그믐달로 구분지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달 모양에 따른 특별한 개연성은 없지만 나름대로 유추해보니 각각의 달이 주는 이미지처럼 글에도 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초승달은 이웃, 동물, 가족, 친구, 엄마, 추억 등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추운 겨울 길고양이 가족을 위해 준비한 사료를 까치가 점령하고 다른 까치 무리와 음식 다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 겨울나기 하는 동물들에 개입한 나를 탓한다. 매일 아침 엄마에게 문안 인사를 했던 여동생이 미국으로 떠난 뒤, 무심했던 나는 동생처럼 연속극 이야기를 시시콜콜 하면서 엄마와의 거리감을 좁혀간다.

반달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이 묻어난다. 커다란 나비장을 딸에게 갖다 주기 위해 짐을 들고 전철을 탄 노모를 지켜보는 타인들의 시선에는 안쓰러움이 담겨 있다. 11월이 되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 북카페에 매일 들르는 남자의 이야기,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브레히트의 ‘나의 어머니’)’ 를 인용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 한다.

보름달은 소원을 빌 듯 꿈에 대한 이야기다. 귀농의 꿈, 드럼을 치고 싶어 하는 고2가 된 딸의 꿈, 동년배 커피집 주인의 꿈과 세계를 상대로 일생을 걸었다가 좌절하고 지금은 마비되어가는 몸으로 커피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노인이 오버랩된다. 치열한 삶을 살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 행복이지만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우리는 한참을 살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그믐달은 더불어 사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치과에 가기 싫어 몇 번을 예약 취소하는 어른의 일상에 웃음이 난다. 교수 임용시험장에서 번번이 만나는 Q와 A의 공생하는 모습이 처량하면서도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치과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예수에 대한 허무맹랑한 대화에 그만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평범한 일상이 무료하다고 생각될 때, 함박웃음을 짓고 싶을 때,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이 책을 추천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달에게 먼저 전해진 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가능하면 당신을 한번쯤 환하게 웃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봄날 방을 구하러 다니거나 이력서를 고쳐 쓸 때, 나 혼자구나 생각되거나 뜻밖의 일들이 당신의 마음을 휘저어놓을 때, 무엇보다 나는 왜 이럴까 싶은 자책이나 겨우 여기까지 인가 싶은 체념이 당신의 한 순간에 밀려들 때, 이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달빛처럼 스며들어 당신을 반짝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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