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족사
나무가족사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5.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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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박일만

덕유산 향적봉
능선에 터를 잡은 노간주일가
어미는 이미 늙고 병들어 수척했고
갈라진 자궁 틈에 자식을 낳아 키우고 있었다
핏기 가시고 관절 꺾이어 반쯤 몸 기울인 어미,
어미의 가랑이 밑에서 자란 새끼나무 몇몇,
장성한 자식들이 기막히게 뻗은 손에 기대어
버티고 있었다
간신히 숨 붙어 있는 어미를 자식들이
양손 겨드랑이에 넣거나 어깨를 받치고,
어미도 곁의 자식들에게 마지막 남은 온기를
건네주고 있었다
칠십 평생을 찬바람 속에 살면서도
가슴은 늘 자식들을 덥히신 어머니,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그렇게
안고, 업고 부대낀 적 없는 나만 부끄러웠다
능선길이 내내 울컥 차올랐다


※ 큰 나무 아래 작은 나무들이 자랍니다. 그 작은 나무 아래 막 움트며 싹의 틔운 여린 것들이 푸릇푸릇합니다.
말없이 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나무들도 가족이 있어 든든합니다. 서로 서로 의지해 살아가는 풍경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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