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디드 차(車)는 안되나요?
서스펜디드 차(車)는 안되나요?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3.05.0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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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메일이 왔다.

35만원을 자동차 수리비로 지급했다는 내용이다. 고요하던 마음이 또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첩을 열어본다. 노란 번호판 아래 범퍼가 반짝반짝 윤이 난다. 사진을 확대해 꼼꼼히 둘러봐도 매끈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보험회사 서류상에 의하면 차대 차 충돌하여 파손된 차량 뒷모습이다. 난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지난 삼사월은 유난히 힘겨웠다. 덕분에 벚꽃 흐드러지게 피던 시간들을 방에서 골골 앓으며 보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친구가 문의 대청댐 쪽엔 아직 벚꽃 피더라고 바람을 넣었다. 몸도 조금 가벼워진데다 흘려버린 시간도 아쉽고 걱정만 끼쳐드린 친정엄마에게 미안해 때늦은 봄꽃 구경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

밀리는 차 때문에 물류센터로 빠지는 샛길을 놓치는 바람에 신호등 앞에서 정차 중이었다. 어쩌다 브레이크에 올려놓았던 구두 끝이 살짝 미끄러지며 앞차를 추돌했다.

추돌이라기보다는 슬그머니 닿았다는 설명이 맞다. 앞차 운전자는 팔짱을 낀 채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았다. 옆에 앉으신 엄마조차 무슨 일인지 모를 만큼 추돌 충격도 없었는데 결국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야 했다. 사과조차 받지 않는 운전자보다 보험회사에서 나온 직원이 하는 말에 더욱 화가 났는데 입원은 안하신다니 다행이란다. 운전자는 범퍼가 밀렸다고 했다. 기스도 나지 않는 추돌에 중형차 범퍼가 밀렸다면 그런 차를 누가 타겠나 싶었지만 뒤에서 추돌한 사람이므로 현장에선 아무 말도 못하고 보험회사 직원에게 수습을 부탁했는데 예상을 깨고 수리비가 너무 많이 보상되었다. 차도 본인이 고친다며 현금으로 수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차간 거리를 넉넉하게 확보하지 않고 정차한 내게 책임이 있긴 하지만 이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철저한 조사 없이 보험회사 직원끼리 적당히 합의하여 나가는 보상비가 결국은 가입자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런 관행은 계속되는 걸까

그동안 나 역시 여러 차례 추돌을 당해보았지만 범퍼가 깨지지 않는 한 사과만 받고 헤어졌다. 범퍼 정도는 서로 양해를 해도 괜찮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차를 아끼는 사람은 또 나름의 의견이 있겠지만 무엇이든 눈치 보며 모시고 사는 건 딱 질색인 나이기에 차 역시 운송수단일 뿐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피해자로서 쿨하게 보내줄 때와 달리 반대입장이 될 때마다 홍역을 치르게 되니 은근히 부아가 난다.

내 얼굴을 똑 바로 못 보던 그 운전자. 아마 양심에 부끄러웠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아마 다음에 반대로 택시에 추돌당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듯 가볍게 정리할 수 있을까 자신없다. 나는 아직도 노란 번호판이 선명한 그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있으니까.

엊그제 지인이 추돌사고가 있었는데 괜찮은거 같아 그냥 보내줬다며 웃었다. 보내고 나니 여기 저기 차가 우그러져 있더란다. 다음에 혹시 그런 일 당하면 한 번은 그냥 보내주라고 말할걸 그랬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운전자들끼리도 요즘 번지는 ‘서스펜디드 커피’같은 운동이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이 자기 것을 사면서, 커피 한잔 사 마실 형편도 안 되는 곤궁한 다른 사람을 위해 추가로 한 컵 값을 미리 지불하고 가는 관습이다. 기부한 사람과 기부 받는 사람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커피 한잔이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차도 경미한 추돌시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 배려를 나누어줄 수 있음 좋겠다. 그럼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꽃 몸살 좀 잔잔해지려나 싶었는데 사방으로 붉게 번지는 철쭉과 영산홍에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소풍 나가고 싶은 마음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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