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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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8.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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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쌌던 종이에 향기가 난다
어느날 부처님이 설법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러 제자에게 둘러싸여 길을 걷던 부처님께서 길가에 떨어진 종이조각을 보고 "저기 버려진 종이가 무엇에 쓰였던 것일까" 하고 제자들에게 물었다.

한 제자가 종이를 주워 냄새를 맡았더니 향내가 났다.

"이 종이는 향을 쌌던 종이인 것 같습니다. 종이에 향내가 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러하냐는 표정을 짓고 말없이 그냥 길을 계속 갔다.

얼마를 더 가자 이번에는 길가에 새끼줄 토막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부처님은 다시 물었다.

"저 새끼토막은 무엇에 쓰였던 것일까"

아까처럼 한 제자가 새끼줄 토막을 주워 다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새끼줄은 썩은 생선을 묶었던 것인가 봅니다. 생선썩은 비린내가 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부처님께서 걸음을 멈췄다. 제자들도 걸음을 멈추고 무슨 말을 하시려나 하고 귀를 기울였다.

"사람은 선업을 짓는 사람이 있고 악업을 짓는 사람이 있다. 선업을 짓고 사는 사람은 향을 쌌던 종이가 향내를 풍기는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에서 향기가 나오고 악업을 짓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악취가 나오게 된다. 향기 나오는 사람의 마음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대개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본래 깨끗하지만 모두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도의 뜻이 높아지고 우매한 벗을 가까이 하면 재앙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종이가 향을 가까이 하였기 때문에 향내가 나고 새끼는 생선을 꿰었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아서 차츰 물들어 친해지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법구비유경' 쌍용품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인간의 선행과 악행을 향기와 악취에 비유한 것으로 향기롭게 사는 것이 삶의 참된 의미임을 설한 법문이다.

오탁악세의 혼탁이 인간의 심성을 자꾸만 오염시키는 오늘날의 세태를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이 인간의 참모습일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모두가 정신없이 허둥대면서 자기 정체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문명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병풍에 깊이 중독되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독된 삶이란 결코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없는 것임에도 해독의 처방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내리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마음을 지혜롭게 쓰지 못하는 정신적 불우 환경에 처해 마음의 공덕을 유실하는 쪽으로 나가니 이미 정신적 돌파구를 찾는 방향감각이 상실된 셈이다.

탐, 진, 치 삼독(三毒)만 자꾸 늘어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꼴이다. 환경오염이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오염되면 결국 정신적 불구의 결과가 오고 마는 것이다.

친절에 의해서 분노를 이기고 선에 의해서 악을 이겨라. 베풂으로 인색함을 이기고 진실로써 거짓됨을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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