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정한 사람  
안녕 다정한 사람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3.05.0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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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오랜만에 찾은 서점에는 이야기를 품은 종이의 냄새와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분주하면서도 차분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즐겨 읽는 책이 무엇인가 궁금해 테이블마다 한가득 올려진 날 봐 달라고 다소곳하게 연지곤지 찍고 앉아 있는 책들을 뒤로하고 베스트셀러 서가를 먼저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그 앞에 서서 가만히 책들을 바라보았다. 선뜻 손이 가는 책이 없다. 한 벽면 가득 채운 것은 온통 마음을 다독이는 책들이었다. 순간 우리네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너나없이 따뜻한 다독임이구나 싶어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도 힐링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힐링을 찾아 멀리 떠나기엔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오늘 그리고 내일, 해야 할 일들이 지갑 속 구겨진 영수증처럼 팍팍하게 꽉 차 있다. 그래서일까 제목마저도 따뜻한‘안녕, 다정한 사람’(이병률 저·달·2013) 이라는 책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제목을 읽고 손을 뻗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이 있다. 안녕, 다정했던 사람. 책 제목 하나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래도 내가 행복했었구나 싶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아련해진다. 그래 그의 말처럼 먼 후일, 기억하게 되겠지요. 우리도 그러하겠지요.

너무 많이 쏟아져 흔해져 버린 여행 에세이를 특별한 기획으로 흔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이 책이 철저하게 기획된 작품이라는 것은 열 명의 글쓴이를 보고도 짐작할 수 있다. 기획이 아니라면 감히 이런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서점에서 공연장에서 라디오에서 그리고 TV에서 친숙한 열 명의 사람과 그들이 선택한 아름다운 열 곳의 도시, 그리고 하나의 카메라로 담아낸 여행 이야기가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장소를 찾아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만큼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로 다른 방식의 매력을 맛봄과 동시에 지구를 한 바퀴 걷게 되었다.

호주로 와인을 만나러 떠난 소설가 은희경, 영화감독 이명세의 눈으로 바라본 앵글 속의 방콕,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필리핀으로 슬쩍 바람피우러 떠난 시인 이병률, 소설가 백영옥에게 소중한 옛 추억이 묻어 있는 홍콩, 역사 소설가답게 이름마저도 생소한 미크로네시아를 눈으로 보듯 사실적으로 담아준 김훈, 그녀의 힘 있는 삶처럼 뉴칼레도니아 바닷물에 마음을 풍덩 빠트린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입맛 다시게 만드는 요리사 박찬일의 규슈 에키벤 여행,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도시 런던을 찾은 뮤지션 장기하, 뉴요커가 아닌 뉴욕 이방인 소설가 신경숙, 멀리 있어 쉽게 가기 힘든 만큼 매력 넘치는 도시 퀘벡을 찾은 뮤지션 이적. 이들이 들려준 다정한 이야기는 며칠 밤을 날 다독여 주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치유하는 시간,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출·퇴근 시간의 꽉 막힌 도로, 그보다 더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답답한 오늘을 보내고 있다면 향기 가득한, 좋아해서 아껴둔 차 한 잔을 준비하고 책장을 펼쳐보자. 비록 잠자는 시간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조팝나무 흰 꽃이 봄의 절정을 알리듯 오늘 하루 내 삶이 절정의 시간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곳에서 얻은 비밀 하나로 기운을 얻어 눈을 반짝일 것’이라는 이병률의 말처럼 우리는 아마도 이 책에서 얻은 따뜻한 기운 하나로 오늘 밤 단잠과 함께 두근거리는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안녕, 다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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