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무엇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대학은 무엇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4.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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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대학 시절 나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그분은 이른바 대학 안에서의 비학문적 활동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당신만의 학문세계를 개척하고 후진 양성에만 힘을 쏟았다. 나는 사회생활을 얼마간 하고 대학에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었다. 사회에서의 출세 지상주의에 어느 정도 물든 다음 대학에 들어온 것이다. 이런 나는 스승의 엄격하고 냉정한 지도를 통해 학문 연구가 사회에서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곧 이해관계에 따른 경쟁의 장에서 자유로워질 때, 대학이 대학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때문인지 학위를 마치고 대학에 임용된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웠다. 몇 년 전 학교의 보직을 맡아 일을 시작했을 때 원로 교수와 대학에 대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는 교수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명분과 실리라고 할 수 있는데, 실리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 조금 더 많다고 말하였다. 그에 대해 나는 배운 바대로 명분 때문에 움직여야 대학이 대학다워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원로교수는 그건 대학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하였다. 일을 하면서 원로 교수의 평가가 경륜에서 우러난 현실인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로의 조언 때문에 이상주의자였던 나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어느 조직에서나 이상과 현실의 대립은 있게 마련이다. 그 대립 가운데 조화로운 균형점을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균형추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 조직은 심각한 내홍이나 갈등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외부의 힘에 휩쓸려 정체성을 잃게 될 수 있다.

요즈음의 대학과 대학을 둘러싼 사회분위기를 보면 이상과 현실의 긴장 관계에서 실리를 따지는 현실 쪽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와 외부 기관에서는 재정지원을 받거나 행정 제재를 받지 않으려면 대학에 대해 취업률을 비롯한 각종 지표를 높일 것을 요구한다. 실리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정부나 외부 기관에서 마련한 기준을 충족시키라는 말이다.

이 같이 외부의 평가에 맞추다보면 대학은 이상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과 같은 조직으로 변질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교수들은 지적 호기심이나 학문적 열정으로 움직이기보다는 논문 편수를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교정에는 학문 연마보다는 스펙 쌓기에 치중하는 취업준비생들로 넘쳐난다.

물론 대학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외딴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이 이렇게 사회 현실에 종속적인 조직이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해관계와 실리만을 생각한다면, 대학은 기업이나 정치 집단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인 조직처럼 보일 수도 있다. 대학이 이해관계에 종속되고 실리만을 추구하는 순간 대학은 상대적으로 무능하고 저급한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사회적 책무는 실리추구가 아니다. 대학에 울타리를 쳐주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이유는 교수들의 순수한 학문에의 열정과 교육, 학생들의 학문 연마가 당장 코앞의 이익을 넘어서는 중요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현실적 이해관계와 실리에 경도된 대학의 균형추를 이상 쪽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이 사회적 책무를 다함과 동시에 사회의 다른 조직에 대하여 비교우위를 지닌 조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적 열정과 교육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학자적 양식으로 대학을 움직여야 할 때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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