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영혼
육체와 영혼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04.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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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우리는 ‘육체와 영혼’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을까, ‘영혼과 육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을까 아무래도 ‘육체와 영혼’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분명히 ‘영혼과 육체’가 많다.

한자어권에서 육체와 영혼은 ‘형신’(形神)이라는 표현을 썼다. ‘신형’이라고 쓰는 경우는 꿈 이야기를 하는 경우와 같이 예외적인 때다. 육체가 먼저고, 정신이 뒤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내용상 약간은 다르지만 한사코 ‘마음과 몸’(mind & body)이다. 정신적인 것이 앞선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우리말에서 보자. ‘귀신’(鬼神)도 형체가 있는 ‘귀’가 형체가 없는 ‘신’을 앞선다. 흔히 귀신이라고 하면 도깨비나 좀비처럼 무서운 형상의 존재를 가리키지만, 전통적인 용법에서 귀와 신은 엄격하게 구별된다. 귀는 돌아갈 귀(歸)로 해석하여 땅에 묻히는 것이고, 신은 펼 신(伸)으로 해석하여 하늘로 퍼지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땅에서 나오는 귀신은 강시( 屍)처럼 정신은 없고 형태만 갖춘 멍청한 놈이다.

‘정신’(精神)이라고 말했지만, 엄격하게는 ‘정’과 ‘신’도 구별된다. 사실 현대어에서 사라진 것이 ‘정’이라는 개념인데, 정은 순수한 물질을 가리킨다. 물질이긴 한데 아주 순수한 것으로 엣센스(엑기스)를 말한다. 정미소의 정미(精米)라는 말도 쌀을 왕겨만이 아니라 겉을 8분도, 9분도, 10분도 이렇게 도정(搗精)하는 것을 일컫는다. 쌀을 깎는 것 곧 쓿는 것을 말한다. 일상용어에서는 ‘쌀을 찧다’라고 많이 쓴다. 그렇듯 정신의 ‘정’은 순수하긴 해도 물질성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산천정기’(山川精氣)를 받는다고 할 때도 그것은 공기이던, 흙이던, 나무의 피톤치드이던 뭔가 있어야 한다. 정기는 물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정자’(精子)라는 표현도 그 안에 사람의 원형이 들어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현대어에서 이 정에 해당되는 단어는 아쉽게도 없다.

이렇게 형질이 다른 정과 신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기’(氣)이다. 그래서 정기도 있지만‘신기’(神氣)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그래서 정과 신이 기로 잘 연결되었을 때를 건강한 것으로 본다. 정과 신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정신이 나간 것이다.

서양에서 정신이 육체에 앞서기 시작한 분명한 연원은 데카르트로 보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의 실체가 ‘생각하는 것’과 ‘부피를 지닌 것’으로 엄격하게 나눠진다고 보았고, 나아가 생각이 부피를 지닌 것을 움직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형태는 껍데기에 불과해진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 시체를 ‘보디’(body)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말에서 ‘몸’은 결코 시신을 가리키지 않는다. 몸은 살아있는 것이고 자체 내 동작기제가 구비되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몸이 곧 ‘주검’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말하는 몸은 정말 소중하다. 그저 영혼을 담는 주머니가 아니다. 육신을 함부로 하는 젊은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주자가 말하는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敢毁傷)’-몸은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감히 훼손하면 아니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은 마음의 집이고, 몸이 없이는 마음도 갈 때가 없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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