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보내기
떠나 보내기
  • 김유숙 <수필가>
  • 승인 2013.04.2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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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유숙 <수필가>

진달래 꽃을 따러 나섰다. 산벚꽃과 생강나무꽃이 진달래와 어우러져 겉에서 보기엔 온산이 구름바다인데 산 꼭대기에 있는 생강나무꽃이 더러는 나무에 달린채 얼었다. 사십년만에 사월 추위라더니 생각하며 활짝 핀 진달래 꽃보다 언 생강나무꽃으로 눈이 간다. 

어젠 우리 가게에 사십년 단골인 한 노인의 부음을 들었다. 나흘 전에 와서 큰 아들 집에서 겨울을 나고, 양봉하는 작은 아들에게 줄 쑥을 뜯어 말리기 위해 아직은 추운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 간다며 한 나절 동안 있다 가셨다.

이젠 못 내려 온다고 돌아오는 겨울까지 잘있으라며 몇 번이고 내 등을 두드려 주던 할머니다.

“ 겨울에 또봐!” 손을 흔들며 가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비일 비재하다. 아끼고 아꼈던 참깨를 막내 며느리 출산하면 가져 간다며 기름 짜 달라고 하던 노인이 참기름은 가져 가지도 않고 그냥 막내 아들네 가서는 다시 오시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한 분도 있다. 인생길 동반자를 먼저 보내고 큰 집에 혼자 남아 말고프고 정고프게 사는 이들도 많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장날 아침이었는데 혼자 사시는 노인이 와서는 평소에 하던대로 방앗간에 너저분한 물건들을 말끔하게 치우고 장보러 간다고 나갔다. 한참만에 들어 와서는 다짜고짜 오십만원든 가방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옥신각신하다가 “내 돈 내놔 이 도둑년아!” 하며 내 머리채를 휘어 잡는 손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장날이라 손님도 많았고 얼마나 창피한 노릇인가. 억울하고 분한 생각에 노인의 큰 아들을 불렀는데 내 모습을 보더니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노인을 모셔 갔다. 팔년째 치매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을 풍문에 듣는다. 

거의 사십년동안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손님들과 많이 싸우고, 일과 사람에 치어 증발해 버리고 싶은 때도 많았는데 반백이 된 지금은 내 식솔도 아닌 그 분들 보내기가 쉽지 않다. 애잔한 마음이 가슴속을 계속해서 감돌아 떠나지 않는다.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돌아가실때도 이렇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과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과 한백년 살 줄 알았는데 내 주변에서 점점 떠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언젠가는 나 혼자 남아 외로워 할테고 아니면 누군가의 가슴에 내 모습을 오랫동안 각인 시키고 떠날 것인가.

혈연도 밥 먹듯이 끊어 내는 세상에 지연, 그것도 거래 목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애기를 내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땅에 떨어진 진달래 꽃잎과 언 생강나무 꽃잎을 바구니에 담는다. 동행한 이가 성질도 이상하다며 내가 주운 꽃잎을 쏟아 버리고 그녀가 딴 꽃을 한움큼 담아 준다.

※ 필진

2001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현재 음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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