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정말 죽은 것일까?
대학은 정말 죽은 것일까?
  • 김귀룡 <충북대교수>
  • 승인 2013.04.2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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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교수>

지난 한 달 동안 대학에 관한 언론보도를 보면,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굵직한 타이틀 몇 개만 나열해 보아도 대학의 구성원들은 필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지원 연구비 부당사용액, ㅇㅇ대가 압도적’ ‘대학은 외딴 섬 아니다’, ‘대학서 쫓겨나는 인문사회과학’, ‘공무원 붙으면 대학 관둘래요’, ‘불안한 모습의 대학들’, ‘대학생 74% 대학교서 배운 외국어 도움 안 돼’, ‘침묵의 카르텔 교수 86% ‘표절 눈감거나 조용히 처리’, ‘대학의 죽음 부르는 교수사회 도덕불감증’ 등의 타이틀이 언론을 장식해 왔다.

사회의 변화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학, 연구비와 관련된 교수 비리, 학생들의 대학 교육에 대한 불만, 학자적 양식이 상실된 연구 부정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언론에서는 ‘지식인의 죽음’, ‘대학의 죽음’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하여 대학의 현실을 암울하게 보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대학을 들여다보자. 4년제 일반 대학의 전임교원 수는 어림잡아 6만 8000명에 이른다. 대학의 전공 영역은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문화, 인간 문제 등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며, 교수 개개인은 해당 분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라서 정부 각 부처에서는 정책을 입안하거나 기업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자 할 때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정책 연구팀을 꾸리거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바 있다. 곧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정신으로 무장한 지성인의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다.

나아가 대학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곧 교수는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 일 뿐 아니라 교육 전문가이기도 하다.

대학 구성원들의 역량이나 자질로 볼 때 대학의 죽음까지 언급되는 오늘날의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교수 모두가 연구와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갖추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지성인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문제 교수들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학 전체를 죽은 조직으로 매도하는 것은 편향적이다. 문제 있는 공무원이 있다고 행정조직 전체가 죽은 것은 아니며, 문제 있는 정치인이 있다고 정치계 전체가 죽은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교수들은 순수한 열정을 갖추고 연구와 교육, 사회봉사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내부적인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갖춘 조직임에도 대학이 죽었다는 극단적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의 뛰어난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건 시스템이 구성원의 역량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 그리고 사회적 봉사의 책무를 다할 수 있으면 된다. 지금도 사회의 여론이나 대외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교수들은 묵묵히 연구와 교육,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이 죽었다는 평가는 시기상조이다.

정작 대학을 죽이는 것은 문제 있는 교수들을 구실로 강요되는 규제 일변도의 시스템이다. 조용한 다수의 구성원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뀐다면, 대한민국의 대학은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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