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納 山)과 꽃
다산(納 山)과 꽃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4.2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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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다산(納 山)은 전라남도 강진 도암만을 굽어보고 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정약용(丁若鏞)은 30대 후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장장 18년을 이곳에서 유배생활(流配生活)을 하였으므로 다산(納 山)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아호(雅號)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유배생활(流配生活)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과 그리움이었다. 다산(納 山)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그리움의 계절인 봄이 오면, 집 생각이 더욱 각별하였다. 이처럼 각별한 집 생각이 다산(納 山)의 꽃에 대한 기호(嗜好)마저 바꾸어 놓았다.

◈ 꽃을 찾아서(訪花)

折取百花看(절취백화간) : 백 가지 꽃을 다 꺾어 봐도

不如吾家花(불여오가화) : 우리 집 꽃만은 못 하구나

也非花品別(야비화품별) : 꽃의 종류가 특별나서가 아니라

지是在吾家(지시재오가) : 단지 우리 집에 있기 때문이어라

※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여기에도 유효하다. 유배살이 거소(居所)의 여덟 흥취(遷居八趣)라는 연작시(連作詩)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시이다. 힘든 유배생활이지만, 나름의 흥취를 찾으려고 애쓴 다산(納 山)의 의연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에 꽃을 찾아다니는 것(訪花)도 유배생활 중의 흥취 중 하나였다. 생기 넘치는 봄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다산(納 山)이 봄꽃을 좋아한 데에는 그의 기구한 신세가 작용한 듯하다. 유배생활의 시름을 잊기 위해 온갖 봄꽃을 찾아 나선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꺾어서 집으로 가져 와 두고두고 감상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봄꽃을 만끽(滿喫)하는 와중에 시인에게 불쑥 떠오른 것은 고향 집이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면 고향이 생각나 듯이, 시인은 봄꽃을 보면서 고향 집을 떠올린 것이다. 고향에도 달이 떠 있듯, 고향 집에도 봄꽃이 피어 있을 터이다. 고향 집에 피었을 봄꽃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떠오른 순간, 지금까지 그렇게 예뻐 보이던 봄꽃들이 갑자기 시들해 보인다.

왜 그런 것일까? 시인의 고향 집에 피었을 꽃의 종류(花品)가 유배지의 꽃들보다 뛰어난 품종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고향 집의 꽃이나 유배지의 꽃은 별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유독 고향 집의 꽃만이 예뻐 보이고, 유배지의 꽃들은 시들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고향 집이 그립고, 가족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봄의 산야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유배생활 중의 흥취로 여긴 시인이었지만,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별 다를 것이 없는 꽃인데도, 유배지의 꽃은 그저 그렇고 고향 집의 꽃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이다. 봄꽃을 본 설레는 감성(感性)에 깊은 우수(憂愁)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도리어 슬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름다운 광경들에는 특별한 사연들이 많이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봄꽃처럼 아름다운 광경은 다시없을 것이다. 봄꽃이 아름다운 크기에 비례해서, 봄꽃에 얽힌 사연들도 많을 것이다. 봄꽃을 함께 보며 즐겼던 떠나간 님도 생각날 것이며, 봄꽃을 보며 뛰놀던 고향도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그리움과 아픔은 다르다. 봄꽃을 보고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되 아파하지는 말아야 한다. 아파하는 것은 봄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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