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잘 버무려야 제 맛
무엇이든 잘 버무려야 제 맛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04.2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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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봄이면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학교에 갔다 오면 할머니는 간식으로 쑥버무리를 쪄서 내놓으셨다. 쌀이 귀했던 시절이라 밀가루와 쑥을 버무려서 작은 시루에 쪄서 덮어 놓았다가 주시곤 했다. 쌀가루에 비해 씹어 먹는 식감이 좋아 지금도 쌀보다는 밀가루에 버무린 쑥 버무리를 좋아한다.

제가 끝나면 할머니는 바구니와 칼을 꺼내 주시며 쑥을 뜯어 오라고 하셨다.

먹고 싶은 마음에 싫다 소리도 하지 않고 논둑으로 나갔다. 마을 앞에 펼쳐진 논에는 겨우내 자란 보리가 온통 초록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등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논둑에 엎드려 바구니 가득 쑥을 뜯고 갓 피어나는 자운영 꽃으로 꽃시계와 꽃목걸이를 만들어 꽂고 더러는 제기를 만들어 친구들과 차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그립다.

오늘 나도 그 때처럼 쑥을 뜯었다. 그리고 슈퍼에 가서 쌀가루를 사다가 옛날 기억을 더듬어 쑥버무리를 만들었다.

김이 오르면서 알싸한 쑥 내가 풍겼다. 그런데 열어보니 기대가 너무 컸었나? 아님 내 요리 실력의 문제인가? 그보다는 비율이 맞지 않았나 보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쑥버무리 맛은 찾아볼 수 없이 죽처럼 질어터진 쑥버무리가 되고 말았다.

쑥 향기에 비해 볼품없이 만든 버무리를 먹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너무 어린 쑥을 뜯은 것 같다.

어린 게 좋다는 말에 무조건 연한 것만 뜯었다. 쑥버무리 용 쑥을 뜯을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걸 알겠다. 너무 어려도 맛이 안 나고 너무 커서 억세도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양력 사월 중순에 뜯는 적당한 크기의 쑥이어야 참맛이 난다.

다음에는 비율의 문제다. 쑥이 좋다고 욕심을 부리다가 너무 많이 넣은 것 같다. 밀가루도 너무 많이 넣으면 쑥 향이 약해지고 쑥이 너무 많아도 쫀득한 맛이 떨어진다. 적당한 비율로 버무리는 맛이 바로 손맛이고 바로 그게 쑥버무리 맛을 결정한다. 좋다고 해서 무조건 많이 넣다가는 비율이 맞지 않아 맛을 버린다는 것 신중히 생각할 일이다.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을 넣고 버무려 만드는 요리는 어느 것 하나가 많거나 적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모든 음식은 주재료와 부재료가 적당하게 섞여야 제 맛을 낼 수가 있다.

어디 음식뿐이겠는가? 세상사는 이치도 같을 것이다. 혼자서는 살수 없는 세상이다.

온통 잘나고 똑똑한 사람만 산다면 얼마나 숨이 막히겠는가?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같이 어울려야 똑똑한 사람들이 더욱 빛날 것이 아닌가 남음과 부족함이 합해져야 평균이 되는 것이다.

쑥버무리를 식탁위에 놓는다. 진동하는 쑥 내음에 봄 향기도 함께 묻어나온다. 아~~ 행복한 봄내음이여! 모처럼 향긋한 쑥버무리를 만들어 찌면서 나는 또 하나 새로운 지침도 버무려놓았다. 음식조차도 비율이 맞아야 하거늘 항차 우리 삶에서의 버무림은 말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이를테면 어울림이야말로 치밀한 비율과 그에 아우르는 인품의 크기로 좌우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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