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노동
인간과 노동
  •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 승인 2013.04.2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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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노동에 대한 창세기의 말씀에는 상반된 두 가지 의미가 나타난다. 첫 부분에서 노동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거룩한 사명(창세기 1,28조)을 말하고 있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죄를 범한 인간이 그 벌로써 받아야 하는 고된 노역(창세기 3,17)이다. 그래서 인지 현실에서 노동은 인간에게 축복이며 동시에 저주로서 다가온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노동을 축복으로 만들고 무엇이 노동을 저주로 만드는가? 노동을 항상 축복으로 만들 수는 없는가?

노동을 생존의 수단으로 만들 때 노동을 불편하고 괴롭고 귀찮은 것으로 여기고 노동을 소홀히 할 때, 타인의 노동을 갈취하려 할 때, 노동은 저주로 다가온다.

그러나 노동을 통해서 유용하고 창조적인 생산물을 만들고 보람과 성취를 느낄 때 노동은 좋은 것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가치 있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고 높여주는 것, 인간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이루어 주는 것으로 노동을 이해한다면 노동은 축복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서 노동을 통해 공동선에 이바지한다면 노동의 축복은 나 개인의 성취를 떠나 사회와 국가의 축복이 된다.

하지만 경제 논리만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인간은 살아있는 노동을 제공하는 경제의 한 요소로 전락해 가고 있고, 노동 역시 경제적 의미 이상을 담아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인간 노동의 의미가 왜곡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위협받던 개발독재 시대로 다시 회귀하려는 사회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에 서 있다. 인간이 돈보다 더 고귀하기 때문이다. 노동은 단순한 상품이나 비인격적인 생산 도구로 간주될 수 없고, 거대한 생산 체계를 움직이는 부속품이 아니며, 자본의 종속물이 아니다. 분명 노동과 자본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상호 보완 관계로 존재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계보다 못한 처지로 전락한 노동의 가치에 대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절망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는 진압헬기가 머리위로 자신이 매일 기름 치고 조여 왔던 나사와 볼트를 쏟아 부을 때 기계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시키려는 자본가들의 횡포에 노동자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끝까지 저항했다고 한다.

자본가들이 노동의 현장과 존엄성을 간과하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노동을 평가한다면 우리 사회의 공장들은 인격이 말살된 거대한 수용소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선한 포도밭의 주인이 필요하다.(마태오복음 20,1-16) 한 포도밭 주인이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수시로 찾아 일을 맡긴다. 일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들을 구해내고픈 마음뿐이다. 포도원 주인 덕분에 생계가 막막하던 이들은 시름을 덜고, 일하지 못함으로써 자존감마저 흔들리던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고에 대해 삯을 계산한다. 인간 경제의 논리를 따른다면, 한 시간 일한 사람은 열 시간 일한 사람이 받는 몫의 십분의 일만 받아야 한다. 하지만 포도밭 주인은 일자리를 찾다가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도 열 시간 일한 사람과 똑같이 대우한다. 노동의 양의 적고 많고를 떠나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세계적 경제위기의 폐해는 노동자들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2008년 이후 전 세계를 몰아치는 경제위기는 분명 금융 자본가들의 못된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으로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선한 포도밭의 주인처럼 노동의 가치를 고귀하게 인정하고 배분하며,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가난한 노동자들을 돌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자본가들과 재벌들 중에는 선한 포도밭 주인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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