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와 화담 서경덕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3.04.17 1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형님, 도저히 안되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돼요.”

“가라케라.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아끼는 후배는 5년 동안 사귀던 여친이 결별을 통보했다고 했다. 후배는 누가 봐도 탐나는 신부감인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5년 동안 노력을 기울였고,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내가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속에 마침내 그녀는 이별을 통보했다. 전화통화를 하고 황망해 무엇이 문제였나 곰곰이 생각하던 중 박성희 박사의 저서 ‘황희처럼 듣고 서희처럼 말하라(2007)’를 다시 펼쳤다. 아끼는 후배를 위해 이 책의 내용을 옮겨 본다.

황진이는 벽계수, 소세양, 이사종, 지족선사, 서경덕 등 뭇 사내들을 만났다. 이 남자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황진이를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며 접근한 남자들, 둘째는 황진이와 일종의 게임을 펼치려고 접근한 남자들, 셋째는 황진이가 직접 찾아 나선 지족선사와 화담 서경덕이다.

당시 황진이의 명성은 온 나라에 자자해 못 남성들이 그녀를 탐했을 것이다. 게다가 황진이는 누구와도 잠자리를 할 수 있는 기생 신분이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내들은 황진이를 단지 성적인 대상으로만 대했을 것이다. 이들 사내와 황진이와의 관계는 도구·수단적으로 인격적 만남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부류인 벽계수와 소세양은 일종의 게임 차원에서 황진이에게 접근했다. 천하의 황진이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또는 황진이가 자기에게 반해 하룻밤을 보내게 했다는 남자로서의 자기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둘 모두 황진이 앞에 무릎 꿇게 된다. 교과서에서 배운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는 이들의 사랑게임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지족선사와 화담(花潭) 서경덕은 황진이가 도전심을 가지고 직접 찾아간 경우로, 지족선사를 파계승으로 전락시키고 화담선생을 찾아간다. 당시 사회는 양반이 기생과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리학자인 화담선생은 황진이의 숨은 의도를 알고도 제자로 받아들였다. ‘한 방에 잠을 자겠다’는 무리한 요구도 받아들인다. 화담선생은 열린 마음과 꾸밈없는 태도로 황진이를 대했다.

화담선생은 왜 황진이의 육체적 유혹을 거부했을까? 황진이는 화담선생을 유혹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당시 황진이는 기생 신분이었고 세상은 양반 남자가 지배했다. 겉으로는 점잖은 채 거들먹거리지만 여자의 육체 앞에서는 벌벌기는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남자들을 무너뜨리는데 목숨을 거는 황진이. 황진이의 인생관은 세상과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인생관을 증명하려 당대 최고의 인격자인 화담선생을 무너뜨리려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것을 간파한 화담은 차마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화담 또한 황진이의 육체에 욕심이 났겠지만, 화담은 자기 욕심을 차리기 전에 황진이를 먼저 배려한 것이다. 화담은 자신을 절제하는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데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것이다. 만약 화담마저 황진이에게 무너진다면 황진이의 인생관과 삶의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세상과 세상 남자들을 냉소하며 기생으로 삶을 마감할 것이다. 사실 황진이에게 화담은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이었다. 황진이는 화담선생의 열린 마음과 진정어린 배려로 인해 그에게 진짜 반했다. 이 사건으로 황진이는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기생이 아닌 천리를 터득한 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사랑하는 후배야, 여친을 네 사람으로 만들려 올인하기 보다 여친을 진정으로 배려하는데 올인하여 네게 반하게 만들어라. 화담선생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