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 15분의 값
봄 밤 15분의 값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4.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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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시간이 돈이다’ 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은 현대인의 금과옥조처럼 되어 있다. 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인생이라는 것은 오직 시간으로만 이뤄져 있으니,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된다는 교훈은 비단 미국의 18세기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것만은 아니었다. 13세기 중국의 소식(蘇軾)도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여 각별히 아꼈는데, 특히 봄밤의 시간을 제일 값나가는 것으로 쳤다. 그가 매긴 봄밤의 값은 과연 얼마였을까?

◈ 봄 밤(春夜)

春宵一刻直千金(춘소일각치천금)

봄밤의 15분은 천금의 값

花有淸香月有陰(화유청향월유음)

꽃에는 맑은 꽃향기, 달에는 달그림자

歌管樓臺聲寂寂(가관누대성적적)

노래와 음악 즐기던 누대는 말소리 잦아들고

韆院落夜沈沈(추천원락야침침)

그네 뛰던 후원에는 밤이 깊어만 간다



※ 같은 봄밤을 제목에선 춘야(春夜)라 하고, 첫 구에서는 춘소(春宵)라고 한 것은 평측(平仄)을 의식한 것일 뿐, 의미상 달라지는 것은 없다. 춘소일각(春宵一刻)이라는 말에는 점층적인 강조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일 년 사계절 중 돈으로 쳐서 제일 비싼 게 봄이다. 이처럼 비싼 봄도 낮과 밤으로 나누어 값을 매기면, 밤이 더 비싸다. 얼마만큼 비싼가 하면, 일각(一刻)에 천금(千金)이고, 그러니까 4각(四刻)인 한 시간은 사천금(四千金)인 셈이다. 천금이 지금 돈으로 얼마쯤 되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춘삼월(春三月) 봄밤 모두의 값은 억만금(億萬金)이나 됨 직하다.

그러면 이처럼 봄밤이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맑은 향기가 나는 꽃과 그림자 드리운 달이 있기 때문이다. 낮이 시각(視覺)의 시간이라면, 밤은 청각(聽覺)이나 후각(嗅覺)의 시간이다. 그래서 낮엔 잘 느끼지 못하던 꽃향기가 밤이 되면 또렷해진다. 꽃향기는 멀어질수록 맑아진다(香遠益淸)는 말이 있듯이, 이 시의 무대인 누대(樓臺)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봄꽃의 향기가 밤이라서 더욱 맑게 느껴진다. 누대(樓臺)는 이제 적막해졌지만, 얼마 전까지는 노랫소리에 악기소리에 왁자지껄했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봄밤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누대에 모여들어 한바탕 춘연(春宴)을 벌인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화창한 봄날임에도 바깥출입이 여의치 않았던 아낙들은 담장이 둘러쳐진 마당에서 그네를 타는 것으로 상춘(賞春)의 행락(行樂)을 대신하였다. 낮부터 시작된 그네 타기는 밤까지 이어졌고, 깊은 밤 시간이 되어서야 멈추어졌다. 왁자지껄한 누대(樓臺)의 봄 잔치며, 마당의 그네 타기는 모두 15분에 천금(千金)이나 나가는 봄밤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의 몸짓이다. 마지막으로 봄밤의 몸값을 올려주는 것으로 적막함을 시인은 상정한다. 잔치가 파하고 놀이가 끝나면 보통 허무해지지만, 이 시의 느낌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적막함은 봄밤을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봄밤의 가치를 돈으로 말한 것에서 속기(俗氣)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봄밤을 돈으로 따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엔 돈과는 상관없지만 값어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즐길 줄 아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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