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인 10색의 여행에세이 ‘안녕 다정한 사람’
10인 10색의 여행에세이 ‘안녕 다정한 사람’
  •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3.04.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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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나에게 여행이란 내 안의 고갈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이며, 한 달 동안 꼬박 출근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고, 엄마, 아내로 열심히 산 것에 대한 선물이다. 여행은 주로 가족과 함께 가지만, 1년에 한 번은 가족이 아닌 지인과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떠난다. 올해 나를 위한 여행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규슈지역이다. 이달 말 예정으로 항공권과 호텔, 료칸 등을 예약하면서 여행의 설레임은 시작된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작가, 음악인, 영화감독 등이 가고 싶은 나라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각각의 색으로 표현한 10인 10색의 여행에세이이다. 와인을 만나러 호주로 떠난 은희경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됐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다. 그녀에게 와인은 ‘혀끝에서 조용히 인사를 나누더니 이내 신비롭고 서늘한 매혹으로 입안을 장악했고, 삼킨 뒤까지 오래 남아 향기의 품위를 지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리움 같은 맛이었다. 애잔하고 아련했다.’

그녀의 와인 예찬은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달콤하고 사랑스럽다. 잘 정돈된 포도밭 언덕을 바라보며 와이너리 카페의 커다란 창에서 쏟아지는 햇빛과 산들바람을 느껴보고 싶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과 핀란드 로바니에미로 떠난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이다. 아주 작고 달콤한 케이크로 표현한 겨울의 탈린은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다. 내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보라에 떠밀려 돌아왔으면 싶었다는 한겨울의 탈린은 천진하면서 소박한 낭만, 예스러운 분위기라니 가보고 싶다. 북극선이 지나는 로바니에미는 산타클로스 마을이며, 크리스마스가 되면 세계 각국에서 보내오는 편지가 산을 이루는데 하나하나 답장을 하는 우체국 직원들의 마음은 이미 산타클로스가 된다. 괌 인근의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섬들을 여행한 소설가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에게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은 바다를 좋아하는 것. 뉴칼레도니아의 무인도로 떠난 그녀는 ‘이번에도 난 바다를 찾았다. 그 열린 공간, 육체와 같은 온도의 바닷물, 은은한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 햇살 다. 너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 나를 마법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것들이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든다는 무인도로 떠나는 여행은 한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은 일상탈출이다. 그 외에도 요리사이며 에세이스트인 박찬일의 일본 에키벤 도시락 여행, 뮤지션 장기하의 맥주와 공연을 마음껏 즐긴 영국 여행, 소설가 신경숙의 뉴욕 맨해튼 거리, 뮤지션 이적의 캐나다 퀘벡여행, 영화감독 이명세의 태국여행, 성냥개비를 씹으며 바바리코트를 흩날리던 주윤발과 비련의 도시 장국영이 생각나는 홍콩을 여행한 소설가 백영옥 등 열 가지 빛깔들이 각각의 향기가 난다.

도서 ‘안녕 다정한 사람’은 각 나라의 소개에 머물지 않고 그 곳에 말 걸기를 시도하면서 우리가 미처 여행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미세한 손짓들을 옹기종기 풀어놓는다. 이 책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흔한 조형물, 유명 관광지는 나오지 않는다. 마치 그곳에 오래전부터 산 것 같은 일상의 작은 풍경들을 그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는 간접경험이다. 특히 여행 안내서나 여행 에세이는 일상에 쫓겨 시간이 없을 때 글과 사진을 통해서 마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하얀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오늘 이 책으로 여행의 설레임을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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