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공해
향기로운 공해
  • 이재성 <수필가>
  • 승인 2013.04.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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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성 <수필가>

지난 주말에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서울을 다녀 왔다. 가는 도중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기지개라도 한번 펴 볼까 하고 몸을 쭉 늘리는 순간 재미있는 문구의 현수막이 눈에 번쩍 띄었다. “인근 농가의 퇴비 살포로 인하여 고객 여러분의 이용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는 건 분명 공해라 할 수 있겠다. 건물 상단의 중앙부분에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어 시위대의 강렬한 머리띠를 연상케 했다.

도심 한 복판에 자리한 고속도로 휴게소는 없다. 거의가 한적한 곳에 있어 주변으로는 산과 물이 있기도 하지만 논과 밭이 인접해 있기도 하다. 봄이 되었으니 인근의 농부들은 일년 농사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기초단계인 두엄을 욕심 내 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냄새라는 것이 뿌려놓은 그 자리에 얌전하게 머무는 것이 아닐진대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고 싶은 휴게소 측의 입장에서 보면 꽤나 정도가 심각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내가 겪어 본 경험으로 봐서는 그 냄새가 여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마을은 산세 수려하고 공기 맑은 청정지역이다. 이 산골 마을에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퀴퀴한 냄새로 온 동네가 진동을 한다. 두엄 냄새다. 논밭 가운데에 터를 잡고 살다 보니 턱 밑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봄볕 좋은 날에도 창문 하나 열어놓고 살 수 없을 지경이다. 후각이 예민한 탓만은 아니다. 워낙 사방에서 시 세워 뿌려대니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몇 년 동안을 그렇게 주기적인 봄 몸살을 앓고 살았다. 창문을 걸어 잠그고 유배생활 아닌 유배생활을 했다. 아내 또한 그 고충을 삭이느라 홍역을 치르곤 했다. 심기가 불편한 일이라도 있는 날이면 대놓고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고 내게 화풀이를 해 대니 낸들 무슨 지은 죄가 있는 것이며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논밭에 거름 뿌리는 일을 막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우리 국민들의 먹거리에 대한 개념은 이제 바뀌었다. 과거의 식생활이 양(量)적인 것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질(質)적인 것에 치중한다. 같은 농산물이라도 얼마만큼 친환경적으로 재배를 했느냐가 선택의 우선이 된다. 그로 인해 친환경 인증제도가 생겼고 정부에서도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사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대책을 세우고 적극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 남용하던 고독성(高毒性) 농약을 지금 시대에는 아예 생산조차 하지 않는다. 설령 살충효과가 뛰어난 쓰다 남은 농약이 있어 사용했다 하더라도 농산물의 잔류농약성분검사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면 출하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다.

농업발달의 원동력이며 생산성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화학비료마저 이제 경계의 대상이 되어 시비량(施�/�)을 가급적 줄이라는 추세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농사를 지으란 말인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퇴비를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퇴비의 부식과정에서 풍기는 냄새가 조금 역겹긴 하지만 지력을 증진시켜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지탱해 주는 근본이라 생각하면 견딜 만 하지 않겠는가. 비싼 향수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부패한 악취에 비하면 얼마나 애교 있고 아름다운 공해인가. 그런 친환경적 공해는 많을수록 우리의 식탁은 생기가 돌 것이 분명하다.

오늘도 황기 밭에 퇴비 400포를 뿌렸다. 신참 농군이라 기계가 준비되지 않아 수작업으로 했다. 손끝에 닫는 퇴비의 촉감이 마치 어린 아기의 엉덩이 살을 만지는 듯 보들보들하다. 숙성된 홍어의 향이 입맛을 돋우듯 구수한 두엄냄새에 저녁나절 시장기가 몰려 온다. 청국장 생각이 간절하다. 향기로운 공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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