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야희우(春夜喜雨)
춘야희우(春夜喜雨)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4.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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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상에 반가운 것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뭄 끝에 내리는 비일 것이다. 이 반가운 비를 나타내는 말이 단비요, 단비를 뜻하는 한자어(漢字語)로는 희우(喜雨), 호우(好雨), 감우(甘雨), 시우(時雨) 등이 있다.

한자(漢字)의 말뜻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喜), 사람의 호감(好感)을 사기도 하고(好), 맛이 달기도 하고(甘), 때를 맞추기도 하는(時) 비가 바로 단비이다.

초목이 돋아나고, 파종(播種)을 하는 봄철에 단비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을 수밖에 없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봄밤에 내린 단비를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리고 있다.

◈ 봄밤의 반가운 비(春夜喜雨)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 좋은 비는 때와 절기를 알아서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 봄이 되니 알아서 내린다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 바람 뒤에 숨어 몰래 밤에 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 만물을 적시면서도 가늘어 소리가 없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 들길 구름 모두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 강배 불빛만 밝도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 꽃이 찼ㆎ이 핀 금관성이로다



※ 춘향전 과거장(科擧場) 대목의 자자비점(字字批點)이 따로 없다. 시인은 비를 허물없는 친구쯤으로 생각하고, 그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시인에게 비는 좋은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호우(好雨)의 호(好)에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내가 어려운 때 나타나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처럼, 봄이 온 것을 알고, 봄이 필요한 것이 해갈(解渴)임을 헤아려 기꺼이 나타나주는(發生) 비이기 때문에 좋은 비(好雨)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좋은 비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앞에 나서지 않고 봄바람 뒤를 좇아, 남모르게 깜깜한 밤에서야 모습을 보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상 목마른 모든 사물들을 촉촉이 적시면서도(潤物) 표를 내지 않는다. 얼마나 가늘던지 소리조차 없다는 것은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봄비는 익명의 독지가처럼 표 나지 않게 모두를 이롭게 한다. 친구에 반갑고 독지가에 감읍(感泣)한 시인은 이제야 제 정신을 추스르고, 주변 모습에 시선을 돌린다. 들판의 길이며 구름이 모두 까만 것은 밤이기 때문이다. 강배의 불빛만 유독 빛나는 것도 밤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흑(黑)과 명(明)의 대비를 통해 밤을 선명히 그려낸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비에 설렌 시인은 결국 밤을 지새웠다. 강배의 불을 빼고는 온통 까맣던 밤이 서서히 걷히고, 새벽이 오자 멀리 붉고 축축해 보이는 곳이 눈에 띈다. 시인은 그곳이 간밤의 비로 꽃이 찼ㆎ이 핀 금관성(錦官城: 지금의 청뚜)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시인은 어디선가 금관성(錦官城)을 향해 가던 중에 밤을 만나 하룻밤을 묵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것이 봄비였고, 그 봄비로 꽃이 많기로 유명한 금관성(錦官城)의 꽃은 피었고, 그래서 멀리서도 붉은 빛이 보인다는 시인의 능청은 참으로 유쾌하다.

비라고 해서 다 같은 비가 아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봄에 내리는 비는 좋은 친구와도 같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반가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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