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정책… 빵보다 영혼을 위해서도 투자해야
신문정책… 빵보다 영혼을 위해서도 투자해야
  • 최경진 <전 지역신문발전위 부위원장>
  • 승인 2013.04.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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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최경진 <전 지역신문발전위 부위원장>

“신문을 읽은 사람이 그날 대화를 주도한다.”

한국신문협회가 제57회 신문의 날(4월7일)을 맞으면서 내놓은 표어다. 시사 뉴스와 정보를 얻는 창구가 비단 신문매체만은 아닐 텐데 신문을 읽은 사람이 그날 대화를 주도한다는 의미는 무얼 뜻하는 것일까. 아마도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신문매체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깊이 있는 정보’를 신문매체만이 제공하느냐고 혹자는 문제제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주장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각적 감성의 자극이 강하고 시간적 제한이 엄격한 텔레비전 뉴스보다 행간을 읽는 생각의 행위와 되새김의 시간을 더 요구하는 신문매체 특유의 기술적 여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당위나 도리의 정서에 결코 관대하지만은 않다. 기술에는 효율성과 상업성 그리고 산업의 이해를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논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방송과 인터넷, 그리고 최근에는 SNS가 전 세계적으로 정보의 흐름에 가공할만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상황에서 신문 저널리즘의 회생은 아무리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강조된다할지라도 그 입지는 갈수록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첨단 디지털 정보사회가 방송통신융합 시대의 전성기를 누리면서 그 위상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신문이 회생하기 위한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신문방송 겸영이 마치 신문의 위기를 전격 타개할 묘약이라도 되는 듯이 미화되기도 했었지만 지금 그 결과는 어떠한가. 시장지배적인 전국 신문 극소수의 이해에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신문은 그동안 나름대로 위기극복을 위한 대책을 다각도로 마련하면서 신문 저널리즘과 산업의 부흥을 꿈꿔왔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언론을 산업적인 논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무색할 정도로 미디어 정책은 언론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언론이 바로 서야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깊은 말이다. 다양한 여론과 정보가 공존하는 사회가 결국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뜻이다. 소수의 방송 채널과 인터넷 포털이 여론을 독과점하는 작금의 시대에 다양한 여론과 정보를 제공하는 신문 매체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신문의 위기 타개와 경영 개선의 현실적 방안으로 지난해 가칭 ‘신문산업진흥특별법’ 제정을 위한 발의가 국회에서 있었다. 신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의 건강한 공론장 발전을 위한 미디어 정책으로 이해된다. 국회는 이 특별법이 현실화되도록 조속히 노력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신문매체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지원과 그로 인한 미디어 균형발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신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강구하고 있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복지국가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미디어 정책은 당장 눈앞에 빵이 되는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할 게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살리는 영혼에도 적극 투자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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