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옛길 상봉재에서 기생 해월을 만나다
청주 옛길 상봉재에서 기생 해월을 만나다
  •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13.04.0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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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상봉재 옛길은 문장대와 안성 칠장산까지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 중 한 구간이다. 이 길은 과거 청원군 미원이나 낭성에서 소몰이꾼이나 장을 보러 청주를 오가던 사람들이 이용하던 옛길이다. 최근에 걷기 열풍과 함께 가족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특히 이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애선정비를 비롯한 조상들의 추억과 역사, 그리고 자연이 함께하는 도심 속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상봉재를 지나 것대산 봉수대까지 가는 코스를 가장 좋아한다.

상봉재 정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여인 해월의 사연이 나그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사연의 주인공은 기생 해월이다. 해월은 충청도 병영에 소속된 기생으로 홍림의 애첩이었다. 이인좌의 난때 남편 홍림이 죽자 자신도 따라 죽으려 하였다. 그런데 자신이 남편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죽지 못하고 있다가 7년 후에 남편 홍림의 뒤를 따라 순절한 여인이다.

봄을 기다리던 3월 15일 때 아닌 눈보라가 거칠게 휘몰아치던 밤이었다. 해월은 남편 홍림과 함께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폭발 소리와 함성 그리고 양민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기가 가득하고 거세게 번져가는 불빛과 온통 아수라장인 청주성 안으로 장검을 꺼내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남편에게 노모가 계시고 잉태 중인 자신을 생각해서 성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렸다. 홍림은 “내 어찌 혼자만이 살기를 꾀할 수 있겠소. 내가 죽은 후에도 늙으신 어머니를 부탁하오. 그리고 당신이 만약 사내아이를 낳게 되면 홍씨 문중의 대를 이어가도록 잘 길러주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성안으로 뛰어들어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해월은 몇일 후 이인좌를 찾아가 남편 홍림은 물론이고 남편의 상관이었던 이봉상, 남연년 등의 시체를 거두어 우암산 기슭에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홍유복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태어 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유복었던 것이다.

유복이 무럭무럭 자라 세살이 되던 해, “동자가 열 살을 못 넘기고 수액에 의해 요절하리라”는 시주스님의 말을 전해 들었다. 당황한 해월이 시주스님에게 해결 방법을 묻자 스님은 “저 아이를 보국사 주지스님에게 위탁하여 열흘에 한 번 씩 성황당 고개에서 기다렸다가 상봉해야 하며 절대 성황당을 한 발짝이라도 넘어서는 안될 것이다“고 일러 주었다.

아이가 7세 되던 해 해월은 “절대 성황당 고개를 넘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잠시 잊고 그만 성황당 고개를 넘고 말았다. 아이를 그저 빨리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 역시 어렴풋이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자 쉴새 없이 달리다가 그만 연못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

홍씨 가문의 대가 끊어지자 해월은 남편의 부탁을 지키지 못하고 자손을 잘 보존하지 못한 자책을 느끼고, 남편 홍림의 무덤 앞에서 목숨을 끊음으로써 조선 여인의 절개와 의리를 지키게 되었다. 특히 해월은 관기였기에 더욱 그의 정절과 의리를 높게 평가한다.

누구나 귀하고 복된 만남(상봉)을 기대하고 살아간다. 필자도 인생의 귀한 맨토와의 만남을 기원하며 이번 주말에도 상봉재를 올라야겠다. 그리고 조금만 더 걸어서 것대산 봉수대까지 가야겠다. 이 땅에 감동과 복된 소식이 더 많이 전해지길 소망하며 평화와 사랑의 기도를 봉수대에서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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