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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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8.1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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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괴물

강대헌 <청주기계공고 교사>

어느 영화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참고한 그 영화의 시놉시스(synopsis)는 대강 이렇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한강 매점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던 강두는 잠결에 들리는 '아빠'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강두의 중학생 딸인 현서는 이런저런 불평을 하고 햇살 가득한 평화로운 한강 둔치에 느닷없이 괴물이 나타나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괴물은 현서를 낚아채 유유히 다시 한강으로 사라진다. 강두는 눈앞에서 딸을 잃고 갑작스런 괴물의 출현으로 한강은 모두 폐쇄되고, 도시 전체는 마비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강두 가족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만, 위험구역으로 선포된 한강 어딘가에 있을 현서를 찾아 나선 그들은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이미 1000만명 관객을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 '괴물(The Host)'이란 영화다. 올해 제59회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관련 소식을 통해 미리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증폭시켜 놓은 작품이었기에, 나는 내친김에 국내 개봉일을 기다렸다가 즐겨 가는 멀티플렉스(multiplex)를 기습했었다.

그 영화를 보고난 소감을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라면, 사회적 상징들로 가득 찼으며, 관람료가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칸의 반응은 100%가 아니다. '괴물'은 한국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들이 있다. 하루빨리 영화가 개봉돼 100% 관객 반응에 공명하고 싶다"는 말로 지난 6월 8일의 영화 제작 보고회에서 자신감을 내비쳤던 봉준호 감독에게 늦게나마 공감의 박수를 보낸다.

영화를 보고나서의 감정은 복잡다단했지만, 착잡함 같은 것이 무엇보다도 앞섰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독극물의 유해성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수중괴물이 마치 내옆에 있는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그 괴물을 만들어 낸 더 큰 괴물이 바로 내옆에 있는 듯한 아찔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고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거대한 괴물의 이름이 퍼뜩 떠올랐다. 괴물의 이름은 다름 아닌 '시스템(system)'이었다.

물론 시스템이란 말의 의미는 다양하고, 적용의 범위 또한 인간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으므로 시스템 운운하며 섣불리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기가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더욱 삼가고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처치 곤란한 괴물이 되어버린 시스템들을 짚어보고 싶다.

우리 사회의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 몇 가지 시스템들을 감히 호명(呼名)하여 견책한다.

위기관리 시스템이여, 그대는 괴물이다!

협의(協議) 시스템이여, 그대는 괴물이다!

서비스 시스템이여, 그대는 괴물이다!

문화운동 시스템이여, 그대는 괴물이다!

엄연한 하나의 질서로서 짜임새와 조리를 갖추지 못한, 즉 정연성(井然性)을 상실한 시스템은 이미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괴물로 둔갑해서 수많은 선의(善意)의 희생자들을 만들어낼 뿐이기에 나는 감히 다시 힘주어 외친다, "제대로 위기관리 하라, 제대로 협의하라, 제대로 서비스하라, 그리고 제대로 문화운동 하라!"

불교 생태학의 토대를 일궜다는 조애나 메이시(Joanna Macy)를 끌어들이자면, "지구는 살아 있으며, 마음이 없는 곳이 없으며, 모든 생명체가 이웃이다"는 인류의 오래된 가르침이 옳다는 증명을 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엉뚱하게 살아 있는 괴물이 되어버려 우리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 지에 대한 관념들을 변화시켜 소중한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믿음을 줄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아직도 여러 가지 음모론(陰謀論 , conspiracy theory)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상은 '시스템 부재(不在)'의 방증(傍證, circumstantial evidence)을 허용하는 것이며, '시스템 괴물'을 잡지 못해 병이 깊어질수록 엎친데 덮친 모양으로 '패러다임(paradigm) 괴물'의 출현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다음의 영화평은 어느 영화 전문기자가 쓴 것이다. 나의 해석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일부분을 옮겨놓는다.

"그러나 진정한 비극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결국 무능하고 부패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참사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상당한 힘을 지녔다. 구성원의 최소한의 안전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스며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건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진상(眞相)에 대해 너저분하게 늘어놓는 텔레비전 뉴스를 발로 꺼버린다. 그리고서 묵묵히 밥을 먹는다. 결국 희망이란 제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력에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머릿속이 뒤엉켜버리는 불편함을 감수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영화의 친절함은 영어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The Monster'가 아니라 'The Host'가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에 우리는 기생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인 '숙주(宿主, host)'가 진짜 괴물이라는 것에 대해 면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인사말이 이렇게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All systems go!(만사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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