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움
봄 그리움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4.0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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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봄을 그리고 싶어 한다. 시인은 시인대로, 화가는 화가대로, 음악가는 음악가대로 봄을 그린다. 이런 의미에서 봄은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모델이다. 그러나 막상 봄을 그리기가 쉽지 않은 것은 아마추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표현을 일로 삼는 전문 예술가들도 세상에서 가장 흔한 모델을 독창적으로 그려내기는 여간 녹록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천상 시인이었던 당(唐)의 이백(李白)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 봄 그리움(春思)

燕草如碧絲(연초여벽사)

님 계신 연나라의 풀은 푸른 실과 같고

秦桑低綠枝(진상저녹지)

이 곳 진나라의 뽕나무는 푸른 가지를 드리웠소

當君懷歸日(당군회귀일)

그대가 돌아가고 싶은 생각 하실 때가

是妾斷腸時(시첩단장시)

곧 당신 그리워 제 창자가 끊어지는 때입니다

春風不相識(춘풍부상식)

저와 봄바람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데

何事入羅(하사입나위)

무슨 일로 저의 비단 장막으로 불어 오나요?

 

※ 기다린 봄은 결국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님 계신 곳은 연(燕)이요, 본인이 있는 곳은 진(秦)이다. 지금으로 치면 씨안(西安)과 베이징(北京)이다. 봄이 온 것은 마찬가지지만 거기가 어디냐에 따라 봄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철저히 관찰자이다. 남자가 있는 곳도 보고 있고, 여자가 있는 곳도 보고 있다. 남자가 있는 연(燕)이라는 곳의 풀은 푸른 실(碧絲)과 같다. 여자가 사는 진(秦)은 뽕나무 가지가 드리웠다. 지금의 중국 동북지역인 연(燕) 지역은 북쪽이라서 봄이 오는 것도 늦고, 사막처럼 척박한 땅이라서 초목(草木)이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의 풀이 푸른 실(碧絲) 같다고 한 것을 보면 봄이 한창 무르익은 때임을 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서남(西南) 쪽에 위치한 진(秦) 땅은 뽕나무가 흔했는데, 그 푸른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 것은 나뭇잎이 무성해졌기 때문이다.

역시 봄이 무르익은 것이다. 풀이 겨우 돋았든, 뽕나무 가지가 늘어졌든 그리운 건 마찬가지다. 봄이기 때문이다. 남자(君)는 날마다(日) 집에 돌아가고 싶고, 여자(妾)는 무시로(時) 애간장(腸)이 끊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봄은 기다림의 대상이지만, 기다릴 님이 있는 사람에게 봄은 그리움이라는 불청객(不請客)을 맞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맞이했지만, 참으로 모시기 어려운 손님임에 틀림없다. 기다림에, 그리움에 도진 여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은 뜻밖에도 봄바람(春風)이었다. 남편이 올 날을 대비해 방을 꾸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시에서 비단 휘장은 방을 꾸미기 위해 친 것이다. 비단 휘장을 친 방 안에서 여자는 눈이 빠지게 기다리건만, 남자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여자는 조그만 기척에도 남자가 온 것은 아닌지 살피곤 한다. 그런데 갑자기 비단 휘장이 들썩이는 것이 아닌가? 남자가 온 줄 알고 깜짝 놀라 돌아 본 여자의 눈에 보인 것은 봄바람이었다. 실망한 여자는 괜스레 말귀도 못 알아 듣는 봄바람에게 투정을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여자의 방에 왜 들어오냐고 말이다. 푸른 실과 같은 풀, 늘어진 뽕나무 가지, 봄바람에 흔들리는 비단 휘장은 봄을 그리기 위한 소품들이었지만, 정작 시인이 그린 것은 봄이 아니라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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