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7번방의 선물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3.03.1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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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가족들과 ‘7번방의 선물’ 영화를 보았다. 현실성과 작품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단순한 영화라는 일각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인간의 순수함과 진정성만으로 관객을 웃고 울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 간에 공감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여섯살 지능의 지적장애인 ‘이용구’와 그의 어린 딸 ‘이예승’을 통해 인간 본연의, 부모와 자식 사이의 마음을 애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범죄에 몰려도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수한 아빠 ‘이용구’가 교도소에 수감되는 상황 설정은 법과 사법제도가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들에게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절망하게 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두 아버지의 모습과 부정(父情)의 다른 표현 방식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채우려는 아버지와 비우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권력을 가진 아버지는 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희생양을 찾는다. 자신의 슬픔과 황망함의 빈자리를 경찰청장으로서의 체면과 명예와 비뚤어진 부정(父情)의 모습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었다.

반면, 여섯살 지능의 사회적 약자의 전형으로 권력도, 돈도, 사회적 지위도 전혀 없는 이용구는 누명을 쓰게 된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위해나 불이익이 가해질 것을 우려하여 기꺼이 희생양이 된다. 결국 자신의 삶과 목숨을 송두리째 내어 놓는 비움과 희생적인 부정(父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이용구는 교도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목숨을 걸고 보안과장 장민환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그를 구하고 무의식중에서도 과장님을 살려달라고 말한다.

교도소 의무과장 의사는 그런 지적장애 이용구를 두고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사회에 묻고 있다.“유괴하고 들어 온 사람 맞느냐?” “(국가로부터 혹은 권력으로부터)유괴 당해서 교도소에 들어온 것 아니냐?”

영화는 지적장애인의 인권이 유린된 채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그가 국선변호와 재판을 통해 어떠한 권리구제를 받지 못하고 누명을 쓴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부정의와 불합리를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억울한 피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못하는 진짜 정식재판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결국 진짜 재판에서는 풀어내지 못했던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사법연수원의 모의재판에서 가상의 사건으로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으로 영화는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들 또한 발달장애이며 올해 중학교에 진학했다. 건강한 아들의 혹시 모를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눈물을 닦으며 더욱 안타깝게 보았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과열경쟁의 삶에서 우리 세태는 대부분이 돈, 권력, 지식 등의 세속적인 욕심과 가치를 채우려고만 하는데 익숙해 있다. 물질적 풍요와 지식의 홍수 속에 좀처럼 여유와 여백을 찾아보기는 힘든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합리한 현실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게 하는 것은, 정작 세속적인 가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가치를 비우려고 노력해야 영화 속 지적장애인 이용구가 보여준 순수함과 진정성이 우리마음에 조금이라도 자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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