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욕이 부른 참사의 교훈, 바사호
과욕이 부른 참사의 교훈, 바사호
  •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장학사>
  • 승인 2013.03.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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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장학사>

바사박물관은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왕가의 구스타브 2세(Gustav II)가 재위하였던 시기에 건조되어 처녀항해 때 침몰한 전함 바사호(號)가 전시된 곳이다.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17세기 호화 전함 바사호는 총길이 69m, 최대 폭 11.7m, 높이 52.2m, 배수량 1210t, 적재 대포 64문, 탑승 가능인원은 450명이었다. 현재 원형의 95% 이상을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조각상도 많아 스웨덴의 관광명소로 꼽힌다.

바사호는 1628년 8월 10일 스웨덴의 해군력을 과시하기 위해 스톡홀름 항에서 폴란드로 첫 항해에 나섰지만 불과 1000m 정도 항해하다가 침몰하고 말았다.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군함이 무참하게 침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황제의 과욕과 전문성을 무시한 상명하복의 경직된 명령체계 때문이었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당시 스웨덴은 북유럽 발트해 주변 제국 건설에 분주해 막강한 해군력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함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바사호는 그 당시 건설된 전함 중의 하나인데, 국내외 귀빈 등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을 하자마자 열린 포문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몇 분도 운행을 못하고 침몰하고 말았다.

선박 설계자의 계획은 1층에만 대포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을 황제의 명령으로 1층과 2층까지 대포를 설치하여 더욱 웅장한 모양으로 배를 건조하도록 하여, 정량보다 많은 대포와 포탄을 배에 싣는 바람에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돌풍에 가라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바사호를 건조하여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려던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왕으로 ‘북방의 사자,’ 또는 ‘설왕(雪王)’이라 불릴 만큼 문무의 재능을 겸비하였고, 17세에 즉위한 뒤, 재판소를 전국에 세우고, 경제적으로는 외국 자본을 도입하여 스웨덴의 무역을 개발하고, 풍부한 광산을 개척하여 스웨덴을 번영케 했던 인물이다.

1956년 해양 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된 바사호는 침몰 이후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됐고, 1988년 새로운 박물관으로 이전해 1990년 바사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7층으로 구성된 바사 박물관은 바사호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또한 바사호 발견 당시 해저탐색에 사용된 잠수복, 을 비롯하여 1만4000개 이상의 목조품과 700여 개의 조각상, 선원들의 유골과 유품들이 함께 발견되었고, 바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당시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견학 할 수 있도록 관람객을 배려한 점은 우리도 배워야 할 부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바사왕가의 자랑스런 이름을 붙인 세계 최고, 최강의 전함으로 건조된 바사호는 정반대의 교훈을 주며 고목처럼 그렇게 박물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평생을 투신하여 이룩한 전문성을 무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과욕과 조급한 성과 만들기, 그리고 밀어붙이기 식 정책이 만든 불행한 바사호를 보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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