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곳
봄이 오는 곳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3.1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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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부모님 계신 산소 미원면 계원리에 갔다.

지난해 추석에 다녀오고 몇 달이 지난 터라 부모님이 그리웠다. 마음이 울적할 때나 기쁠 때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다.

남편도 오늘은 아무 말 없이 성경책을 들고 나섰다.

내가 기동력이 없어 가고 싶을 때 못가니, 남편에게 꼭 가자고 말을 해야 갈수 있는 것이 아쉽다. 막내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살아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산골마을 느티나무 옆에 차를 주차시키고 부모님 계신 산소 가는 길로 접어드니 조금은 낯설다. 지난 가을 왔을 때 보다 길이 바뀐듯했다.

밭 가운데에는 시골에서 보기 드문 전원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넓은 하늘이 집주변과 마당에 가득하다. 봄기운에 언 땅이 녹아 신발 바닥에 진흙이 붙어 걷는데 불편했다.

그 옆을 돌아 두 분이 계신 산소에 도착하니 마른 잔디 사이로 겨울을 이겨낸 잡초가 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봄 햇살이 차가운 봄바람과 함께 산소 언저리를 따스하게 비치고 있다. 남편과 나는 산소 앞에 서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성경책을 가지고 온 남편의 순수한 마음이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감사했다.

큰 조카가 스물세 살이니 이십년이 훨씬 넘었다. 아버지를 이곳에 안장하던 날 어린 주목 두포기를 심었는데 제법 보기 좋은 교목으로 자라있었다.

어머니는 7년 전 우리 곁을 떠나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 부모님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맴돈다.

부모님이 먼저 가셨지만 우리 삼남매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남편이 이곳에 기분 좋게 온 것은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 같았다.

사실 며칠 전에 막내가 항공사에 입사했다. 3년간의 훈련비를 아버지께서 주신 작은 집터를 종자돈으로 하여 대신한 셈이다. 임종하실 때 남동생에게 누나 집짓게 150평 주라고 했다. 그것을 팔아 훈련비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외손자에게 주신 마지막 은혜다.

하산하는 길에 어릴 적 노닐던 개울을 바라보았다.

얼음이 녹아 봄물이 흐르고 있다. 졸졸졸 봄의 소리가 함께 흐른다. 늘 그리워하던 개울이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지명들을 생각해 본다. ‘임봉’ ‘지땡이’ 할머니도 그립다. 지난 시절이 지금이라면 얼마나 할머니는 기뻐하실까. 할머니도 보고 싶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살던 고향 그곳에 부모님이 계셔서 나는 추억에 잠길 수 있다. 산천은 변함없이 세월이 가도 그대로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변하려는지 모르지만. 개울엔 버들강아지가 추위 속에서도 사랑스럽게 피어 봄을 알린다. 볼에 대니 보들보들한 것이 정감이 간다. 봄은 그렇게 말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산소를 바라보니 봄 햇살이 가득 내리고 있다. 벌써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 그 개울은 봄 햇살을 안고 유유히 흐른다. 봄이 시작되는 이때 막내의 봄도 따뜻하게 잘 풀려 삶의 여정이 푸름으로 펼쳐지길 기다려 본다.

부모님 눈가에 흡족한 눈웃음, 그리고 우리내외에게 손을 흔든다. 환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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