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통행
우측통행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03.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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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이런 말도 십년이 지나면 무슨 이야기인지 갸우뚱할 일이라서 세월이 더 지나기 전에 적어둔다.

우리 사회는 좌측통행을 원칙으로 삼았다. ‘차는 오른쪽으로, 사람은 왼쪽으로!’ 1921년부터 그랬다는데, 왜 그랬는지는 과문한 탓인지 알 수 없다. 80년도에는 좌측통행하지 않은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으니 격세지감이다. 근 90년 동안의 질서가 2010년 7월부터 우측통행으로 뒤바뀐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좌측통행이 교통사고 위험이 많다고 발표했다. 이를테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 좌측으로 건너기 시작하면 차와의 거리가 좁혀질 수밖에 없다. 멀리 떼어놓기 위해서라면 우측통행이 낫다는 것이다. 횡단보도에서의 사고위험이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은 맞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이 대체로 오른 쪽으로 물건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좌측통행을 하다보면 부딪히기 쉽다고 한다. 가방이라도 끌다보면 방해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물건을 왼쪽으로 끌고 다니거나 매달고 사람도 있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만 하더라도 가방을 왼쪽으로 낀다. 오른손으로는 딴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하철에서도 개찰구가 오른쪽이란다. 맞다. 카드를 대는 것이 오른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개찰구를 좌측통행에 맞게 왼쪽으로 바꾸면 그만이며, 그렇다면 여태껏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괴롭혀왔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표를 내는 것은 오른손잡이가 많은 현실에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개찰구를 오른쪽으로 낸다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겹치는 부분을 말하면 문제가 된다. 우측에 개찰구가 있으면 중간에 충돌되는 지점이 없지만, 좌측에 개찰구가 있으면 가운데 한 곳은 충돌된다.

결국 국토해양부의 주장은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의 선진국이 우측으로 가니 우리도 가자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 나가 좌측통행하다가 봉변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간다고 90년의 주장을 바꿔야 하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차를 운전하게 되었고, 차가 우측통행이니 그것에 맞게 보행도 그렇게 하자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더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그런 주장을 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녹색신호에서 차량의 좌회전을 허용하기 위해서 그런가 물을 수 있겠다. 적지 않은 국가가 보행자가 지나가면 차량의 운행을 허용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차 앞에서 빨리 사라져줘야 하는데, 그것에는 우측보행이 맞다. 시작에서는 차와 멀지만 중간지점을 지나서는 차와 가까워짐으로써 차가 좀 더 빨리 다닐 수 있게 된다.

나는 아직도 국토해양부의 정책결정의 진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해외표준에 따르려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자동차를 위한 배려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누구나 차를 몰기에 음모론에는 해당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진화심리학자가 말했다. 정말 대한민국 국민은 착하다고. 바꾸라니 바꾼다. 오늘도 도심에서 사람들이 우측통행을 하는 것을 보며, 이런 국민을 놓고 정치를 못하는 현실이 속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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