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봄 마중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3.03.0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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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건강을 위하여 술과 담배를 멀리 한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 몸이 술과 담배에 찌들어 혹사당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나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정을 하고 습관화된 술과 담배를 멀리 하기에는 남다른 각오와 끈기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술 담배 대신 간식을 자주하고 춥다는 핑계로 운동을 멀리 했더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르고 몸이 무겁다.

보다 못한 아내가 휴일 운동도 할 겸 산행을 제안하여 우암산을 오르기로 했다. 우암산 기슭의 소로를 걷다보니 어느새 땅이 많이 녹아 있다. 얼었던 강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고 개구리가 입을 뗀다는 경칩이 됐으니 벌써 봄은 우리 주위에 다가와 있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아내려 질퍽하니 발이 빠진다. 들판 여기저기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고 바람엔 훈기가 실려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았는데 세월은 오차 없이 계절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새삼 자연의 질서가 경이로워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낀다.

봄이라 하지만 아직은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이 알싸하기만 하다. 계곡에 듬성듬성 남아 있는 춘설 위로 햇살이 미끄러지며 우리 앞을 걷는다.

잠시 여유를 갖고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였다. 늘 집과 직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게으름을 피웠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유치원 가기전에 등산했던 기억이 난다며 아내가 말을 건넨다. 아이들이 힘들어 주저앉으려 하면 조그만 더 가서 쉬자며 걷던 때가 행복했단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자식들도 다 결혼하였으니 참 세월이 빠르다며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런 아내도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는지 곱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아내에게 당신은 하나도 안 변했네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아내는 피식 웃으며 “참말 같은 거짓말 듣기 좋네, 당신도 참 많이 늙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그 말이 당신을 두고 한말 같다”며 웃는다. 나는 그저 허허 하고 웃었다.

나이 탓인지 여린 새싹만 보면 경이롭다.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싹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여린 가지가 대견하다. 계절은 축복처럼 지상으로 봄을 산란하고 있다. 아기들의 천진한 눈망울처럼 신비하고 무궁무진한 꿈과 희망을 안은 봄이 태어나고 있다.

 

지금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할 시간/귀 막고 눈 가리고 묵묵히 참선에 든다/겨울바람이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말 것/모질게 따귀를 때려도 그 자리 벗어나지 말자//

습기는 저 밑바닥에 깊숙이 감추어 두고/ 지금은 심장의 고동 소리도 잠재울 때/ 그동안 그를 기다린 날들이 겨울이라면/ 이제는 그를 만나 봄이고 싶다.//

서로 방법을 몰라 빗겨만 가다가/아니 서로 억지로 다른 곳을 보다가/남풍과 북풍이 소리 없이 섞이는 날/너의 칼날은 무뎌지고 나의 묵언은 끝이 난다//

누그러진 바람이 나를 흔들고/지상으로 전하는 햇볕의 화해의 권고에/따뜻한 기운 스멀스멀 전해져 오면/이제는 그를 용서해도 되겠다.//

 

봄을 맞는 마음을 시로 적어 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가는 것처럼 우리도 많은 풍파를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때로는 남을 아프게도 했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많이 아파하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산을 오르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 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어깨를 웅크리고 종종걸음 칠 일은 없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봄볕이 축복처럼 우리 앞에 내린다. 아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산행, 무슨 큰 욕심이 있을까. 지나온 봄날 보다 앞으로 맞이할 봄을 위해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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