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의 가치
아름다운 삶의 가치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3.02.2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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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2월의 마지막 주말 저녁.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을 막아서며 여인이 반갑게 인사말을 건넸다. 엉겁결에 인사를 받았지만 누군지 기억이 나지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여인은 요즘도 글을 쓰냐고 하면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낯선 얼굴이라 쑥스러워 고개를 끄덕이며 주춤거렸다. 한참 어색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서야 협력회사에 근무했던 여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회사의 협력회사라서 직장동료나 다름없던 여인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주부들이 제법이나 많은 회사라 근무했던 사람들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협력회사에 근무했던 사람들 또한 나를 기억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 나를 곧바로 알고 말을 건넨 여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도 사람을 몰라본다는 것은 보통실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던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돌아섰다. 뒷모습을 머쓱하게 쳐다보다 나는 고개를 주춤거렸다. 무엇 때문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돌아서는 길목으로 올라서면서 생각해도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한참이나 올라서는 길목에서 생각하니 고마운 것은 나였다. 나는 기억도 없는 일에도 고맙다는 인사가 건넸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 마주친 여인의 반가운 인사가 싫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딸이 친정을 다녀갔다. 하지만 올라가는 열차에 좌석표가 없었다. 갓난 아이 외손자와 흔들리는 열차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다행이 갓난아이가 있다고 양보해주는 아저씨가 있어서 편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마도 그 아저씨는 자리를 양보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었는지도 모른다. 고마움을 받은 사람은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도리이기도 하다.

하루의 일상에서도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이 많기도 하다. 수없이 많은 인연을 기억하기란 쉽지가 않다. 거기에 나는 기억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고, 나는 모르지만 나는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어찌 되었던 짧은 인사라도 나누는 것은 서로가 좋은 일이다.

하찮은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도 어색해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당연한 도리의 인사조차 인색해지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가 않은 것이 인사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에서 주고받는 인사와 양보에 미덕은 아름다운 삶에 근원이다. 차츰 인색하지는 인사에 또한 양보에 미덕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많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서는 보험금 때문에 교통사고를 조장하고 가족을 죽이는 사건도 제법이나 많기도 하다. 겸손의 인사와 양보에 미덕은 인색해지면서, 차츰 아름다운 삶의 가치가 물질만능주의로 전도되는 사회로 변해버리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갑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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