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사람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02.25 2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맨 처음 서울에 가 본 것은 1983년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서울에는 일가친척이 전혀 없어 좀처럼 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나같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서울 구경을 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받은 느낌은 참 덥고, 참 복잡하고,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같이 간 친구의 언니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종각 앞이었다. 물어물어 찾아 갔더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수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 우리도 한참을 기다려 친구 언니를 만났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명동을 돌아다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간다던 종로 어디쯤에서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란 신출내기가 말로만 듣던 서울에 와서 다들 주눅이 들어 있다가 알코올이 들어가자 금방 호기로운 말투로 바뀌었던 기억에 웃음이 난다. 그렇게 설레던 첫 서울여행을 짧은 1박 2일로 마쳤었다. 후로도 서울과는 별반 인연이 없어 간다 해도 잠시 머물다 내려오곤 했다.

며칠 전에 부천 큰 아이 사는 곳을 가기 위해 작은아이와 서울에서 전철을 탔다. 전철에 오르니 무척 조용하다. 앉아서 가든 서서 가든 핸드폰을 켜고 말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탓이다. 전철 안에서 들을 수 있는, “공중도덕을 지키자”며 큰소리로 떠들지 말라는 멘트가 전설처럼 아득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또 옆의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닌 핸드폰에 팔려서 그렇다는 게 또한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시골사람인지라 전철을 타면 제대로 탔는지 불안해서 늘 출입문 위에 붙은 노선도 앞에 가 목적지를 확인한다. 그러고 난 뒤에도 언제 내려서 갈아타야 하는지, 갈아타는 곳은 어디인지 제대로 갈아탔는지 불안한 게 사실이다. 그날도 그렇게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50대 후반의 점잖은 여인이 말을 걸었다. “따님인가 보네요” 전철 안에서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인지라 “네” 하고 짧게 대답했더니 아이가 참 예쁘다고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로 서두를 꺼냈다. 당황스러운 마음과 함께 갑자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 말은 뭐라고 할까 내가 동서울터미널에서 승차하는 걸 보고 혹시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 티가 나서 그러는 건 아닐까 라는 온갖 부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그 여인은 몇 정거장을 지나서 내리며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말까지 덧붙였다. 여자가 내린 뒤 아이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이심전심으로 웃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태어나 살던 내게 서울은 너무나 멀었고 주위에 서울을 가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대한 에피소드는 별반 유쾌하지 않았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동네 오빠들의 무용담에 의하면 서울은 ‘한 눈 팔면 코 베가는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인식이 되어서인지 서울은 아직도 낯설고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두렵고 무섭다는 생각은 없으나 하루만 머물러도 머리가 아프고 그렇게 긴장하다 보면 곱으로 피로를 느끼곤 한다. 내게 있어 서울은 어릴 때처럼 여전히 마뜩치 않은 공간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울에 대한 선입견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니 지하철에서 사심 없이 말을 건네 온 여자를 경계한 것은 극히 당연했다.

딸아이와 헤어져 금왕에 내려오니 맑은 공기와 시원한 풍경에 기분이 다 상쾌하다. 버스에서 내리며 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맘, 이제 도착했다. 이 여유로움 이 포근함 딸~~ 이번 주말에는 꼭 내려 와라’ 나는 역시 서울내기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골 취향인 게 너무나 행복한 하루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