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의 버들
이월의 버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2.1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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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음력 2월은 춘삼월(春三月)의 한 가운데에 해당한다. 이때쯤이면 봄은 초입을 지나 정점으로 내닫는다. 물을 잔뜩 머금은 버들가지는 더 이상 봄을 견디지 못하고 강아지 털처럼 보송보송한 버들개지를 피운다. 버드나무는 흔히 물가에서 자라는데, 그 덕에 봄의 혜택을 가장 먼저 맛보는 특전(特典)을 누린다. 꽁꽁 얼었던 강물이 녹아 다시 흐름을 시작하면, 그 물은 강 언덕으로 스며들어 언덕에 대기하고 있던 버드나무의 뿌리와 반갑게 해후(邂逅)한다. 이렇게 피어난 버들개지는 겨울의 메마른 버드나무 가지에 봄의 촉촉함과 따스함을 머금고 사람 앞에 나타난다. 당(唐)의 여류시인(女流詩人) 설도(薛濤)가 그리고 있는 버들개지도 이러한 것이었다.

◈ 버들개지를 읊다

二月楊花輕復微(이월양화경부미)

이월의 버들 꽃 가볍고도 희미해서

春風搖蕩惹人衣(춘풍요탕야인의)

봄바람에 흔들려 사람의 옷을 건드린다

他家本是無情物(타가본시무정물)

남의 집에선 본디 감정이 없는 존재건만

一向南飛又北飛(일향남비우북비)

한결같이 남쪽으로 날다가 또 북쪽으로 난다네



※ 제목에는 유서(柳絮)로 되어 있고, 첫 구는 양화(楊花)로 되어 있다. 하나는 솜(絮)이고, 하나는 꽃(花)이지만 모두 버들개지를 뜻하는 말이다. 버들개지는 보통의 꽃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흡사 솜과 같다. 이러한 버들개지는 음력 정월이면 움이 터서 이월이면 통통한 게 한껏 물이 오르고, 솜 같은 꽃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시인은 이러한 모습을 가볍고(輕) 희미하다(微)고 표현하였다. 공중에 펄펄 날리기 때문에 가볍다(輕)고 한 것이고,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희미하다(微)고 한 것이다.

이처럼 가볍고 희미한 버들개지는 봄바람에 쉽게 흔들려 사람의 옷에 달라붙는다. 겨울의 무겁고 가라앉은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버들개지의 가볍고 활동적인 이미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버들개지야말로 봄의 방랑객(放浪客)이자 유희자(遊戱者)이다. 흔한 것이 버드나무인지라, 집집마다 있기가 쉽다. 남의 집 버드나무는 본디 사람의 감정 따위와는 무관하겠지만, 내 집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내 집 앞마당 버드나무에서 피어난 버들개지는 필시 주인의 마음을 살피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선 주인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주인 대신 그리움을 자신의 가벼운 솜 같은 꽃에 실어 주인의 님에게 전한다. 남쪽에 계신 님에게 가기 위해 줄곧 남쪽으로만 날아간다. 북쪽에 계신 님에게 가기 위해 줄곧 북쪽으로만 날아간다. 그리움을 알고 그리워 하는 님을 알고, 그 분이 계신 곳을 아는 버들개지가 어찌 감정이 없는 물건(無情物)일 수 있겠는가?

가벼운 몸짓으로 공중을 날며 사람의 옷에 정겹게 달라붙는 버들개지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절망 같은 겨울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긴 겨울 동안 매사에 심드렁하고 무감각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춘흥(春興)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도 버들개지이다. 까맣게 잊혀져있던 그리움들이 스멀스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은 흡사 버들개지의 움이 터지는 것과 같다. 다시 도진 상사(相思)의 열병(熱病)을 그리운 님에게 전하는 것 또한 가볍고 희미한 버들개지의 몫이니, 버들개지는 오지랖 넓은 봄의 진객(珍客)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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