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단상
겨울단상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2.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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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산골 겨울은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장작을 밀어 넣고 일찌감치 군불을 지핀다.

기름보일러와 겸용으로 아궁이를 만든 황토방에는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군불을 자주 때지는 못한다. 모처럼 불을 넣으니 아궁이는 꾸역꾸역 연기를 내뿜는다. 눈물 콧물도 잠깐, 뜨거운 열기가 영하 십도의 날도 맥을 못 추게 만든다. 이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자아도취에 빠지는 시간이다. 뜨거운 불꽃에 마음을 빼앗기며 잠시 유년으로 간다. 

안채에 밥 짓는 연기가 몽그락몽그락 피어나고, 쇠죽 끓이는 사랑방 굴뚝에서는 황소 닮은 연기를 힘차게 내뿜는다. 볏단을 써는 일과 쇠죽 끓이는 담당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바깥일이기도 하고 큰 소를 다루는 일이라서 남자들의 몫이었다. 작두에 볏짚이 싹둑거리고 잘리는 걸 보면 할아버지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음 졸였던 생각이 난다. 썬 볏짚을 쇠죽솥에 넣고 자투리콩과 콩깍지 한 삼태기와 맨 위에 쌀겨를 얹고 끓인다. 어느 땐 고구마와 늙은 호박을 넣는다. 고마움인지 연신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며 여물 먹는 암소를 바라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하시던 두 분, 가으내 일을 실컷 부렸으니 농한기에는 정성들여 잘 먹이고 쉬게 하는 것이 소에 대한 도리이고 배려였을 것이다.  

나는 쇠죽솥 앞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소두방 뚜껑은 드럼 같은 음악 기기였다. 부지깽이로 장단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 딸 노래 잘 부르더라 한번 불러봐.”

한밤중 가족이 둘러앉아 있을 때 아버지께서 노래를 시키시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도록 쑥스럽고 창피했지만 그 끼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싶다.

불이 사그라져간다. 큰 숯불부터 꺼내어 화로에 담고, 그 위에 잔가지 숯불로 덮어씌우니 화로로 하나 가득하다. 고구마를 몇 개 묻는다. 군고구마 냄새가 구수하게 퍼진다. 구수한 고구마냄새를 따라 하늘만 빠끔했던 산골의 고향마을의 저녁풍경이 떠오른다. 마음은 어느새 어린 시절 긴 겨울밤이 가져다 준 추억 속으로 향한다.

화롯불을 방안에 들이면 싸늘했던 공기가 금세 훈훈해 졌다. 우리는 화롯가에 빙 둘러앉아 석쇠를 걸쳐놓고 노가리도 구워 먹고, 칼국수를 미는 날에는 국수꼬리 도 구웠다. 겨울철 주전부리는 주로 화로 옆에서 즐겼고, 장난도 많이 쳤다. 한번은 마당에서 오빠랑 배구를 하다가 화로에 손을 집어넣어 손등을 데기도 했다. 좋은 일은 물론 그런 소소한 사건들마저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내 삶의 재산이 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삶도 �!賤斂�, 가족 간의 정도 나누게 해 준 화롯불. 화롯불은 또 조리며 난방이며 심지어는 인두를 꽂아 좁은 깃을 다리는 다림질도 가능케 해준 생활도구였다.  

올겨울은 추워도 정말 너무 춥다. 그것은 꼭 기온이 다른 해보다 특별히 더 낮아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옛 고향의 포근한 겨울 모습이 사라져간 탓일까. 아니면 가슴 시릴 정도로 마음 아팠던 일 때문일까.

잠깐 사이에 방안을 훈훈하게 한 화롯불처럼, 싸늘한 마음도 녹이는 따스한 화로 하나 간직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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