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배시인의 문학칼럼
박화배시인의 문학칼럼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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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랑 (Ⅶ)
박화배 <시인>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냐/ 이시라 더면 가랴마 제구야/ 보고 그리 정은 나도 몰라노라.' 어져 내일이여, 황진이 시조

현대어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아! 내가 한 일이 후회스럽구나. 이렇게도 사무치게 그리울 줄을 미처 몰랐더냐. 있으라 했더라면 임이 굳이 떠나시려 했겠냐마는 내가 굳이 보내 놓고는 이제 와서 새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 자신도 모르겠구나."

정이란 그 대상이 가까이 있을 때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욱 그리워지는 법이다.

떠나려는 님을 만류할 수도 있었겠지만, 떠나게 두어 두고는 그리워서 애달파하는 마음을 섬세하고 정결하게 표현하였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내면으로는 외롭고 연약한 서정적 자아의 정신세계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님을 떠나보낸 후의 회한을 진솔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이 시조는 당시 대제학을 지내던 소세양이라는 유명한 문인을 떠나 보내놓고서 황진이가 지은 시조이다.

이덕형(李德炯)이 쓴 송도기이(松都記異)에는 황진이에 대해서 '그녀의 미모와 재예는 당대의 최고이고, 노래도 절창이어서 선녀라는 별명을 얻었다'라고 기록되어져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인간 황진이를 선녀라고 찬미한 것은 다소 지나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는 하나 어느 좌석에서나 황진이의 노래를 들은 그 시대의 명사들은 한결같이 그 목소리와 표정에 도취되어서 그녀가 '선녀인가 아니면 신녀인가'라고 극찬하며 얼이 빠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것은 황진이가 누구보다도 특별히 멋들어지게 노래를 잘 불렀고 또한 얼굴과 자태가 빼어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황진이에 대해서 그 당시 대단한 명사였던 대제학 소세양도 입에서 입으로 건너와 알 수 없는 연정을 불러일으키고 궁금증을 커가게 하는 황진이를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소세양은 황진이가 아무리 절세가인이라 할지라도 한낱 치마 두른 여자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친구들에게 "아무리 황진이가 절세가인이라 해도 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덧붙여 "황진이의 재주와 용모와 자태가 뛰어나다고는 하나 내가 그녀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네. 내가 하루라도 더 묵는다면 사람이 아니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막상 송도(지금의 개성)로 가서 황진이를 만나보니 과연 뛰어난 사람이었다.

소세양은 황진이와 같이 지내면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어느 여자에게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천성처럼 가진 황진이에게 깊이 깊이 빠져들어 갔다고 한다.

절세가인 황진이에게 몸과 마음을 사로잡힌 소세양은 무릉도원의 세월처럼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감을 느꼈다.

무릇 사람은 진실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게 되면 시간의 개념이 무너져 감각이 상실되어져 간다는 것을 그때서야 소세양은 뼈 속 깊이 깨닫게 되었고, 호언장담했던 자신의 어리석고 부질없는 친구들과의 약조를 한없이 후회했다.

허나 어쩌랴.

사내대장부, 아니 대제학 소세양이 한낱 여자에 미혹되어 남자 됨을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어쩔 수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떠나려하니 가슴에 넣고 사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여자,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여자 황진이가 누각에 올라 시(詩)를 읊지 않는가.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
내일 아침 님을 보내고 나면 /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어라. '

봉별 소양곡 세양(奉別蘇陽谷世讓), 황진이 시조

이 시를 들은 소세양은 결국 탄식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며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들어와 더없이 머물렀다고 한다.

황진이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으나 그녀는 평생 두 사람을 가슴속에 품고 생각하며 사랑했다고 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당대의 유명한 문인이며 대제학이었던 소세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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