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이란 용어를 없애자
‘지방대학’이란 용어를 없애자
  •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2.1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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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귀룡 <충북대학교 교수>

수도권의 인구, 정치, 경제, 문화 집중 현상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수도권의 면적은 우리나라 전체의 12%에 불과한데 인구, 공업, 자본, 병원, 대학 등은 50% 이상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에 따라서 수도권에는 주택 부족, 복잡한 교통, 환경 악화, 범죄발생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상대적으로 수도권 이외 지역을 낙후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집중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지역의 우수 인재들이 대학입시와 각종 편입학 제도를 통해 서울로 몰리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도권 대학들과 지방대학의 교육, 연구 여건의 격차도 위험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에 따라서 지역 우수 인재들의 지역대학 진학 기피 현상도 점차로 심화되고 있다. 우수인재 이탈, 이로 인한 지방대학의 낮은 취업률, 그로 인한 지방대학 진학 기피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점차로 견고해지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지방대학 발전을 위해 지방대학의 교육, 연구 개선과 특성화 사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한 지역대학 출신 채용 할당제를 시행함으로써 지역인재의 지역 이탈현상을 막아보겠다고 한다.

정부의 지방대학 살리기가 단순한 선거 구호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지만 차기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지방대학 정책은 미봉책에 그치고 말 소지가 충분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역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이 그 인재를 얼마나 활용할 것인가 정부의 투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방대학들은 얼마나 중앙정부의 눈치를 봐야 할까 소위 말하는 지방대학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몰리고 우수 인재를 원하는 기업도 기꺼이 지방대학 출신을 채용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형성되기 전까지 정부의 지방대학 살리기는 임시적인 처방에 그치고 말 것이다.

차기 정부의 지방 대학 살리기는 수도권 과밀 및 집중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전제되어야 한다. 수도권에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방대학에 떡 하나 더 주는 식으로는 지방대학이 근본적으로 살아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수도권-지방이라는 용어는 중심 지역과 그 주변이라는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 수도권-지방이라는 용어는 중앙 집권적인 제도를 전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구도나 발상을 갖고서 입안되는 정책은 수도권을 집중 육성하여 파이를 키우고 그 과실을 주변부인 지방에 나누어 주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지방 대학은 남는 떡 하나 더 먹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입학생들이 SKY이지 교수나 대학이 SKY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교수들의 연구, 교육 역량은 전국적으로 평준화되어 있으며, 지방대학의 학생들도 학업에 충실히 임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말이다. 지방대학은, 수도권이 곧 중앙이고 타 지역은 주변이 되는 사회 구조와 통념 때문에 설움을 겪고 있을 뿐이다.

차제에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전국의 대학을 서울-경기, 충청, 강원, 영남, 호남, 또는 좀 더 세분화된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 지역(권역) 대학, △△지역(권역) 대학으로 칭하자는 말이다. 중앙과 변두리라는 구시대적인 중앙집권적인 발상을 배제하고 권역(지역)별 문화적 특성에 따라서 다양한 대학을 만들자는 말이다.

현대는 획일화된 가치로는 살아갈 수 없다. 지금은 다양한 가치가 때로는 갈등하고 또 때로는 소통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이다. 과거의 시대정신이 획일화된 질서였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다양성이다. 획일화된 질서 아래서는 차별화된 계층이나 계급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다양성을 표방하는 사회에서는 각자의 권리와 자격을 인정하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시대정신을 따라서 획일화된 질서를 전제하고 있는 수도권-지방 대학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동등한 가치를 지니면서도 다양성을 살려내는 △△권역(지역) 대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특정 용어를 버리거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수도권-지방 대학의 차별화된 구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과 아울러 수도권의 과감한 기득권 포기와 각 지역의 자생적 발전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정책입안자들의 발상 전환이 선행된다면 수도권-지방의 계층화된 구조가 훨씬 빨리 타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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