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그녀의 목소리
친절한 그녀의 목소리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02.1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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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설날 연휴 내내 추웠다. 시댁에서의 체감 온도까지 합하면 영하 20도는 됨직한 기온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댁에서 돌아오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 가져온 음식은 대충 냉장고에 집어넣고 잠을 청했다.

이번 같은 짧은 연휴에는 친정이 멀어 가지 못한 것을 남편에게 있는 대로 생색을 내며 게으름을 피워 본다. 늦은 저녁시간 배가 고파 일어나서 명절 동안 먹었던 느끼한 음식대신 칼칼한 음식이 먹고 싶어 배달 음식을 먹기로 했다. 집에서 가까운 음식점을 골라 수화기를 들었다.

“배달 되지요? 여기 000하구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러게 몇 동 몇 호냐구요” 쏘아 붙이 듯 하는 말에 불쾌해서 “됐습니다” 하고 끊었다. 두 번째 음식점과 통화를 하니 그 집도 마찬가지로 그런 음식은 여름 음식이라 하지 않는다는 쌀쌀한 대답이다. 다른 음식메뉴는 뭐가 되느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끊어 버린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명절 끝에 바쁘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감안 하더라도 손님한테 기본적인 예의는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면 가게 문을 열지 말던지 가게 문을 열었다면 적어도 손님에게 화풀이 하듯 전화를 받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대부분 대면해서 사람을 대할 때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하지만 비 대면일 때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나 또한 핸드폰으로 오는 보험상품이나 그 밖의 상품 홍보를 끝도 없이 해 대는 텔레마케터들에게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 버리거나 내 정보는 어디서 알았느냐는 노골적인 불쾌감을 들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특정 번호는 받지 않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아시는 분이 농담으로 친절한 그녀의 목소리는 텔레마케터들뿐이라고 말해서 공감하며 웃었던 생각이 난다. 오늘 문득 내가 이런 통화를 하고 보니 그들이 말했던 고충이 이제야 들어온다.

텔레마케터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대부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상욕을 해대고 성희롱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 그만 둔 사람의 대부분이 이런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화로 우리를 지치게 하는 그들도 사람이고 막 말을 해 대는 우리도 사람이다. 그러기에 둘 다 썩 기분이 좋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역지사지로 오늘 내가 전화 통화의 불쾌함을 맛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적어도 앞으로는 전화를 받았으면 아무 말 않고 끊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떠나올 때 어머님이 집에 가면 먹을 것이 없을 거라면서 이것저것 싸주신 것은 다시 펼쳐 본다. 전을 싸시면서 파 마늘 넣고 물 자작하게 부어 전 전골을 해 먹으면 칼칼해서 맛있다고 하셨다. 밖에서 찾지 말고 어머님 말씀대로 할 걸 그래서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콩 떡을 얻어먹는다고 했나보다. 찬장 문을 열고 전골냄비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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