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본 설날>광복후 양력설 지정 … 1985년 '민속의 날' 공휴일로
<기록으로 본 설날>광복후 양력설 지정 … 1985년 '민속의 날' 공휴일로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3.02.07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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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개시·삼가다' 3가지 說서 설날 어원

세화·야광귀 쫓기·삼재면법 등 다양한 풍속

왕 목숨 구한 까치위해 설 전날 기념 기록도

설날

김종해 시인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 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으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 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일년내내 소식 한 장 보내지 않아도, 건너 먼 친·인척이지만 혈연관계라는 이유로 끈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게 설날이다. 설은 왜 ‘설’이라 이름 지어졌을까? 까치 설은 왜 어제인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설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어원을 찾는다.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선 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 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돼 설날로 와전됐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 유래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엿볼 수 있다.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 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 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 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돼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불렸다.

◇ 설의 변화

신라시대에 새해 아침에 서로 축하를 하며 왕이 군신에게 잔치를 베풀고 해와 달 신에게 제사 지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날 가족중심의 설은 ‘고려사’에 구대 속절의 하나로 기록돼 있고, 조선은 4대 명절의 하나였다. 한때 1895년부터 태양력을 채용하면서 서양의 양력설과 음력설의 논쟁이 되어 일제와 광복 후 국가적인 유도로 양력설을 지정했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음력설(일명 구정)을 지냄에 따라 1985년 민속의 날로 공휴일이 지정되고 현재는 3일 연휴의 공휴일로 지정됐다.

◇ 풍속

새해에는 다양한 풍속이 있다. 새해를 축하하고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 그림으로 집집마다 대문에 세화(歲畵)를 붙였다. 갑옷을 입고 한 손에 도끼를 든 장군 상을 붙였는데, 이를 문배라 한다. 조선 초에 궁중으로부터 유행된 것으로, 서민들은 길조의 동물인 수탉, 호랑이, 개를 그렸고,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며 천사, 인물, 꽃, 누각 등을 그렸다.

액운이 든 삼재의 해를 맞은 사람이 불행을 막기 위해 옷을 불사르거나 물고기 모양의 떡을 버리거나 지붕 위에 버선본을 오려 깃발처럼 세우거나 달집에 웃옷의 동정을 매어 달아두는 등의 삼재면법(三災免法)도 행해졌다.

마루 벽 위에다 체를 걸어두는 야광귀 쫓기도 빼놓을 수 없다. 동국세시기에는 ‘귀신의 이름에 야광귀라는 것이 있으니 밤에 사람의 집에 들어와 신을 훔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신의 임자는 불길하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은 이를 두려워하여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일찍 잔다. 그리고 마루 벽 위에다 체를 걸어둔다. 그러면 야광귀가 와서 그 구멍을 세다가 다 못 세고 닭이 울면 도망간다’고 기록돼 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유교사상에 따라 1년 내내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아두었다가 정초에 태우는 풍속도 있다. 머리카락을 태우면 1년 동안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 까치 설날은 왜 어저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날이 되면 떠오르는 동요 ‘설날’. 아동문학가이자 동요작곡가인 윤극영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곡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해 왕을 해하려 했는데 까치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이를 모면했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그날을 기념했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소지왕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지정해 까치설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섣달 그믐날은 보통 까치설날이라고 부른다. 설 전날에 입는 설빔을 까치 옷이라고 불렀다. 색동저고리는 까치 저고리, 색동두루마기는 까치두루마기로 불렀고,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늘 등 5가지 색을 이어 붙여 만든 옷을 입으면, 부정한 기운이나 나쁜 운세로부터 아이들을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에선 섣달 새벽에 가장 먼저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해 풍년이 들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여겼고, 중국에선 희작(喜鵲)으로 반가운 손님이나 소식이 올 것을 알리는 새로 인식됐다.



<사진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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