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自尊心) 네 가지
자존심(自尊心) 네 가지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2.0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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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모든 사물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본연의 모습에 대한 훼손을 당하기 시작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있는 대로, 없는 것은 없는 대로 자신의 본 모습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것이 외적인 것이든 내적인 것이든 상관없다.

과연 나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면 나의 의지로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류 역사에 등장한 많은 가르침들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마음먹기 나름이요 가치관의 문제이겠지만, 자신의 본 모습을 스스로 설정하고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여기는 삶들이, 멋있고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늘 노래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아니 판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근본 바탕은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들은 백 번 헤어짐을 겪어도 다시 새 가지가 돋아난다

조선 중기의 문인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야언(野言)이라는 시(詩)이다. 평측(平仄)이나 압운(押韻)과 같은 형식 요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볼 수 없지만, 워낙 내용이 출중하여 애호하는 인사들이 많았는데, 이 중에는 퇴계(退溪)와 백범(百凡)도 포함되어 있다. 장롱을 만드는 목재(木材)로 애용되는 오동(梧桐)은 가야금이나 거문고, 비파 등의 악기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목재로서 결이 좋고 울림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동(梧桐)은 수명이 수십 년에 불과해 비교적 단명한 편이라서, 천년을 늙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은 따질 일이 아니다.

태어나면서 지녔던 울림의 품성이 만든 곡조(曲調)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줄곧 간직한다니, 이것이 바로 오동(梧桐)의 자존심(自尊心)이리라. 아무리 세월이 가도, 어떤 시련이 닥쳐도 존재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자존심(自尊心) 아닌가? 이러한 자존심(自尊心)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매화(梅花)이다. 왜냐하면 매화(梅花)는 평생 추위를 못 면해도 꽃은 반드시 피우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것을 향기를 팔지 않는다(不賣香)고 표현하였는데, 운치가 있면서도, 비장(悲壯)한 맛이 느껴지는 말이다. 매화(梅花)가 향기를 판다(賣香)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향기는 매화(梅花)의 자존심(自尊心)이자 존재의 이유라고 매화(梅花) 스스로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향기를 판다(賣香)는 것은 꽃 피우기를 그만둔다는 것이고, 이는 매화(梅花)가 매화(梅花)이기를 포기한 것이라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혹독한 추위를 면해 줄 테니 향기를 팔라는 제안은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자 협박이지만, 매화(梅花)는 결코 이에 굴하지 않는다. 자존심(自尊心)을 팔아 생을 구하느니, 자존심(自尊心)을 지키며 죽는 것을 택하는 것이 매화(梅花)라는 것이다. 시인의 자존심(自尊心) 타령은 오동(梧桐)과 매화(梅花)에서 그치지 않고, 달과 버들로 이어진다. 천 번이 아니라 만 번 이지러져도, 이지러진 모습 속에 둥그런 근본 바탕을 잃지 않고 남겨두는 것, 이것이 달의 자존심(自尊心)이다. 이지러져야 하는 것은 달의 숙명적 시련이지만, 달은 번번이 둥글어지고 만다. 버들은 어떠한가 헤어짐의 정표(情表)로 꺾임을 수 없이 당해도, 그 때마다 새 가지를 돋우는 것, 이것이 버들의 자존심(自尊心)이다. 자존심(自尊心)을 던진 이 시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오동(梧桐), 매화(梅花), 달, 버들은 자존심(自尊心) 네 가지라 불러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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