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식
봄 소식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2.03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퇴근시간에 바라본 서쪽 하늘엔 해가 좀 길게 걸리었다. 겨울엔 해가 진 후 퇴근을 했는데 어느덧 해가 길어진 셈이다.

봄이 곁으로 조금씩 다가온다. 햇살 또한 한겨울과는 달리 차갑긴 하지만 만지고 싶다.

맘에 설렘이 인다.

어린아이처럼. 우리 집 뜰에도 마른 풀들을 비집고 돋아나는 수선화 싹이 세상 구경을 하러 머리를 내밀고 있다.

도톰해진 매화봉오리, 왜철쭉, 모두 따뜻한 봄 햇빛을 간절히 기다리며 봄바람과 속삭인다. 잎이 없는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도 봄을 기다리는지 청아하게 지저귄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2월에 접어들면 금세 입춘을 맞게 된다.

입춘(立春)은 24절기 중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일 때 봄이 시작된다고 하며 그날이 양력 2월4일이다.

어린 시절 2월 초에 큰 대문이 있는 집은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문종이에 붓글씨로 크게 써서 붙이고 한해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풍습도 있었다. 지금은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바뀜에 따라 그런 풍속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이맘때 시골 들녘 논둑엔 가장 먼저 봄이 온다.

그곳은 햇빛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기 때문에 소꿉친구들과 함께 나물 바구니를 들고 씀바귀를 캐러 논둑으로 향한다.

논둑은 햇빛을 받아 녹아있다. 양지바른 논둑에는 씀바귀가 드문드문 살아 있다. 겨울동안 모진 눈보라를 견디며 봄을 기다린 나물이다.

시린 손을 녹이며 호미로 논둑 미어지는 것은 아랑곳없이 씀바귀를 캔다. 캐낸 씀바귀에 붙은 흙을 털면 노란 잔뿌리가 먹음직스럽다. 다 채우지 못한 바구니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해지기 전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씀바귀를 뜨거운 물에 데쳐 쓴맛을 우려낸 다음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맛있게 무쳐 주셨다.

맛은 썼지만 내가 캔 나물이기에 얼굴을 찡그리며 먹기도 했다. 아련한 추억이다.

눈이 녹으면 작은 뜰로 나가 살핀다.

봄 소식 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이다. 어김없이 노란 싹을 내미는 수선화, 올해도 약속이나 한 듯 나를 반긴다.

분명 봄은 쉽게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몇 번의 모진 추위가 힘들게 할 것을 알면서 이겨내는 인내, 또한 대단하다. 사람들은 추워서 몇 겹씩 옷을 끼어 입고 난방을 하며 추위를 견딘다.

수선화는 어두운 땅속에서 기나긴 겨울을 보내며 손꼽아 봄을 기다렸을까. 또다시 모진 추위가 노란 수선화에게 다가올까 두려움이 앞선다.

자연과 절기는 때를 따라 봄 소식을 전해준다.

우리 삶의 봄 소식은 언제 반갑게 내 곁으로 전해질 것인가. 젊은이들의 일터와 어려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때가 되면 돋아나는 새싹처럼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때로는 막막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절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의 틈새에 한 줄기 빛을 찾아 주어진 현실을 이겨내야지. 언 땅을 뚫고 돋아난 수선화처럼 내게도 들려올 반가운 봄 소식을 기다려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