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모녀
5분 모녀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01.2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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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흔히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우선은 신체적 변화와 정신적 변화가 가장 많은 게 특징이다. 그 위에 충동적이고 유달리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흥분을 잘하는가 하면 공격적이라고도 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는 이와 같은 청소년기의 특징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청소년기인 작은아이랑은 대화를 원만하게 이끌어가지 못한다. 주말에 기숙사에 있는 아이와 만나면 그간의 적조했던 얘기를 나누는 등 수다를 떨다가 5분이 지나면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이번에 만날 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막상 부딪치면 똑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5분 모녀다.

대학시절의 은사님은 강의를 하실 때 그런 말씀을 하셨다. 70년대 당시로서는 드물게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분이다. 더구나 혼자 힘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하시면서 집에서 모녀가 싸우면 이기는 방법을 알려줬다는 게 그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도 나중에 시집가서 딸을 낳거든 싸움꾼으로 만들되 엄마한테 이기고 나가게끔 유도하라고 당부하셨다. 엄마에게 불손하게 대하라는 것은 아니고 정당한 이론으로 자기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라는 게 말씀의 요지다.

교수님이 살던 시대는 여자가 활동하는 게 지금보다 여의치 않을 때다. 여건이 좋지 않을 때라 여자의 몸으로 혼자 유학까지 갈 수 있었다면 강한의지와 노력이 필요했을 거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지금은 그 때부터 한참 지난 시기이고 모든 게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여자에 대한 차별의식은 남아 있을 것이기에 각별한 생각으로 두 딸을 키우려 한다. 함께 토론을 하면 말을 잘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가는 건 물론 나를 능가할 수 있게 유도하는 등 나름대로 고심해 왔는데 고 3이 되고 대학 문제와 부딪치면서 오랜 시간을 대화하기가 참 어렵게 되어 버렸다.

며칠 전 청소년 병원에 들른 적이 있다. 아이가 치료 받는 시간이 길어서 병원 로비에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뜨개질을 하고 있는 내 옆으로 첫 번째 모녀가 앉았다. 시작은 참 좋았다. 두 모녀는 소곤소곤 웃으면서 얘기를 시작하더니 5분이 지나자 “뭐야~~ 누가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가르쳤어?” 라는 말과 함께 금방 얘기가 중단되고 말았다. 침묵이 흐른 후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자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또 다른 모녀가 자리에 앉는다. 그들 모녀 역시 처음은 얼굴만큼이나 예쁜 얘기들이 오고가더니 아니나 다를까 채 10분도 되지 않아 “ 야~~ 얼굴만 이쁘면 뭐하냐 머리에 든 것이 있어야지”로 싱겁게 끝나 버리지 않는가.

이어 그들 모녀가 자리를 뜨고 3번째 모녀가 앉는다. 이번에는 아주 친구 같은 모녀다. 제법 우아하게 차린 엄마를 보면서 저 집은 좀 다르려나 했더니 역시 5분쯤 지나자 결국 엄마가 손부채로 얼굴의 열을 식히더니 밖으로 나가버리고 아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속으로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 우리 집뿐 아니라 사춘기의 딸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엄마는 나랑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문득 큰아이가 지금의 제 동생처럼 대학진학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고심할 때가 생각난다. 두말할 것 없이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 때 역시 대학진학문제로 서로 진지하게 언쟁을 벌이고 다투던 것인데 지금은 언제 그랬나 싶게 훌쩍 커서 친구처럼 지낼 때마다 그 즈음의 다툼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곤 한다. 그러기에 일단은 내가 더 많이 이해하리라 다짐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청소년기 딸아이와 5분 모녀로 살아가고 있으니 문제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도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거라고 결국 지금의 상황도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닥치면 언성이 높아지곤 한다. 성인기도 한참을 지나왔고 소위 사회복지를 전공하고도 여전한 걸 보면 참으로 풀기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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