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아니무스
아니마·아니무스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3.01.2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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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심리학자 융(C.G Jung)은 겉으로 보이는 ‘나(외적 태도, 페르소나)’와 무의식의 ‘나(심혼, 心魂)’를 구분했으며, 심혼은 페르소나를 보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페르소나가 지적(知的)이면 그 사람의 심혼은 틀림없이 감상적이다. 그리고 심혼과 페르소나의 보완적 성격은 남녀의 성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인다. 매우 여성적인 여성은 남성적인 심혼을, 매우 남성적인 남성은 여성적 심혼을 가지고 있다.

심혼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로 구별할 수 있다.

‘아니마(Anima)’는 남성의 정신에 내재되어 있는 여성성의 원형적 심상을, ‘아니무스(Animus)’는 아니마의 남성형으로 여성의 정신에 내재된 남성성의 원형적 심상을 가리킨다.

남성의 무의식에는 여성의 인격이,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의 인격이 내적 인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니마·아니무스는 남성과 여성의 의식에서 억압된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조건인 원형(Archetype)으로 이미 그렇게 되는 있는 것을 핵으로 하여 이뤄진다.

남성이 남성 호르몬 뿐아니라 여성 호르몬을 가지고 있고 여성에게도 남성호르몬이 있는 것은 이런 원초적 조건의 생물학적 토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니마·아니무스를 경험하는 간단한 방법은 지난날을 회상해 보는 것이다.

어떤 이성에 대해 첫눈에 반한 경험을 생각해 보자. 상대는 꼭 애인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여학생에게는 남자선생님이 반할 정도로 매력적인 이성이다. 첫눈에 반할 때는 물론 대단한 매혹함, 절절한 사랑의 감정, 흠모하는 마음, 그리움과 안타까운,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조바심, 전기가 오른 듯, 얼어붙은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말 한마디 못하거나 …. 이 때 그 남자, 그 여자는 자신의 아니마·아니무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아니마·아니무스 원형상을 상대방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남녀의 오체를 사로잡는 힘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것은 무의식의 깊은 곳,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상과 연계되어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자기가 생각했던 이상형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지금까지 상대방에게서 보고 느낀 황홀감 등은 사실은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죽자사자 좋아하던 남녀가 막상 결혼하고 나서 상대방이 이상형이 아님을 알고 실망한 나머지 헤어지자고 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니마·아니무스 원형의 투사는 이렇게 사정없이 사람들의 ‘이성’을 빼앗고 장님으로 만들 수 있다. 눈 먼 사랑으로 인한 실패의 경험은 소중한 보배를 남긴다. 시랑에 실패한 사람은 자기가 상대방에서 본 것이 최소한 ‘허상’이었다고 생각할지라도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의 투사상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즉, 현실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보게 된다. 그리하여 사랑은 내가 원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내 욕심을 채우고 상대를 자기의 이상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임을….

무의식인 아니마·아니무스도 나의 인격이다. 무조건 무의식을 무시하면 정신적 해리라는 신경증적 장애를 유발시킬 수 있다. 따라서 페르소나와 아니마·아니무스의 의식화를 통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좀 더 깊은 자기실현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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