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뮤지컬
오페라와 뮤지컬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01.1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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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도 오페라 전문가가 꽤나 있다. 그런데 면면을 살펴보면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다. 문화적 교양도 교양이지만, 돈도 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고 문화적 교양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이도 문화적 교양을 높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오페라의 본향인 유럽의 경우. 아주 싼 입석도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이 자리를 구한다. 나도 일찍부터 줄을 서서 그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을 서서 본 적이 있다. 대학원생이기는 했지만, 학생이었고 장학금을 모아 만든 기회였다.

점심 먹고 둘이서 줄을 서고 있다가 내가 잠깐 나갔다 왔는데, 나의 지위를 인정해 줄 것인가를 놓고 말다툼이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우리식으로 친구가 줄을 서주면 다른 친구가 자리를 비워도 되는 경우를 놓고 뒷줄의 젊은이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나야 처음부터 서 있다 잠깐 나갔다 온 것이니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보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여지가 있다. 돈이 없는 사람도 누릴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유럽의 공연문화였다.

우리는 언제나 돈과 직결되지 않는 문화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페라가 비싸면 뮤지컬이라도 즐길 일이다. 오페라가 뮤지컬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뮤지컬은 복사가 가능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으니 분명 다르다. ‘뮤지컬 영화’라는 표현은 있지만 ‘오페라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녹화된 오페라는 있지만. 오페라는 독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 뮤지컬은 나름 대중에 다가온 것이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 2012년 당선된 대통령을 뽑지 않은 사람들이 이 뮤지컬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고는 하지만, 참으로 오래된 가극이다. 그런 점에서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진 것이다. 몸을 팔던 아기 엄마 판틴이 소설에서는 앞니를 파는데, 오페라나 영화에서는 모두 어금니를 빼는 것으로 나온다. 앞니를 빼고는 발음이 새서 노래를 부를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앞니 빠진 갈가지가 노래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정 자체가 부담스럽다.

영화를 보면서 주제가인 ‘아래를 보라’(Look down)라는 가사가 순서대로 여러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첫째는, 복종하라. 죄수인 주제에 어디를 올려보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눈깔아’라는 뜻이다.

둘째는, 직시하라. 민중의 삶은 이렇다. 민중의 세상을 바라보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셋째는, 자비를 베푸소서. 죄인이지만 시간을 주시오. 엄격한 경감 자베르 나으리, 우리를 용서하시오. 나도 당신을 살려주지 않았소?

게다가 각운(脚韻), 그러니까 랩에서도 끝소리를 맞추는 라임을 들으려 애쓰니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장발장임을 밝히면 법으로 ‘감옥~’(condemned)가고, 밝히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damned)간다는 식으로 끝말을 맞추는 것이다. 시의 핵심인 운율 맞추기를 즐기기다.

물론 뮤지컬이 재미있으려면 분명한 조건이 있다. 극장이 작아야 한다. 보여야 뭘 한다. 그런 점에서 뉴욕의 뮤지컬 극장은 생각보다는 모두 작다. 결국, 돈이 문제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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