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걸처럼
잉걸처럼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3.01.0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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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영하 25도. 시외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분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온도계 수치다. 낯설다는 댓글에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답을 올려놓았다. 같은 충청도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정말 춥긴 춥다.

우리 집도 올겨울 처음 베란다 유리창에 성에가 끼었다. 손톱으로 긁으니 차갑고 흰 가루들이 뽀드득 일어난다. 아이처럼 유리창에 대고 호호 입김을 불어본다. 맑고 차가운 동그라미 속으로 아침풍경이 만화경처럼 다가온다. 언 눈이 낮은 둔덕처럼 쌓인 길. 웅크린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지난다. 자동차도로는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아주 잠시 저 얼음길 위에서 썰매를 타면 잘 나가겠다는 철없는 상상을 했다.

겨울이면 눈치 없이 큰집으로 내닫던 어린 날이 내게도 있었다. 사촌오빠들과 저수지에서 썰매 타고 깡통에 광솔을 넣어 밤늦도록 쥐불놀이 하던 즐거움을 잊을 수 없어서였다.

신나게 얼음을 지치다 수렁에 빠져 온몸 진흙 칠 하던 날, 울며 대문을 들어서는 내게 큰어머니는 계집애가 사내 같아서 어디다 쓰냐고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치셨다. 서러움도 잠시, 큰 아버지는 오들오들 떠는 나를 데려다 안방 화롯가에 앉혀놓고 가만가만 흰가래떡을 구워주셨다. 화롯불을 뒤적일 때마다 불씨가 발갛게 살아나던 기억, 말없이 눈물을 닦아주시던 따스한 손길은 그리움이 되었다.

함박눈이라도 내려 쌓이는 날이면 동네 골목은 아이들로 왁자지껄했다. 스웨터 끝자락에 얼음을 대롱대롱 매단 채 집안으로 뛰어들면 어머니는 따끈한 아랫목에 손을 넣어주시곤 노는 게 그리 좋으냐고 언 볼을 톡톡 건드리셨다. 그 땐 어찌 그리 추운지 어머니가 짜주신 털장갑 두 겹을 끼어도 손이 시렸다. 아린 손끝이 풀리며 눈물이 핑 돌 때 쯤 이불 가운데 온 식구가 발을 모으고 삶은 고구마를 먹던 기억들은 따스하다. 그리 안온하게 안아주는 곳이 있기에 허술한 입성으로도 추위를 견디었나보다.

강추위에도 베란다엔 철모르는 베고니아 꽃이 붉다. 꽂진 자리 뒤늦은 구절초 꽃봉오리 하나가 꽃잎을 두어 개 열고는 피지도 지지도 못하고 한 달 가량 망설이고 있다. 한낮에 지나는 햇빛이 품어준 덕일까 살얼음 어는 창가에서도 모질게 생명을 잇는다. 그 햇살은 우리네 삶에도 스며들어 불경기라지만 불우이웃돕기 성금 온도계는 목표치를 훌쩍 넘겼다. 햇살 같은 훈훈한 마음들이 있기에 견디고 이겨내리라.

요즘 날씨가 마치 그 어린 날처럼 춥다. 시설 하우스 작물 수확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터뷰에 안타까움만 가득할 뿐. 산이고 바다고 올라오는 소식들이 꽁꽁 얼어있다. 어려울수록 잉걸처럼 마음으로라도 주변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한다.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 긍정적인 말로 위로하며 살자. 그리 견디다보면 또 곧 봄소식이 오겠지.

햇살이 비쳐들며 성에가 녹기 시작한다. 손톱으로 그려놓은 눈사람은 이미 흔적도 없이 흘러내리고 분주한 아침의 소리들이 다시 하루를 연다. 용감하게 창을 열고 어깨를 펴 본다. 코끝이 찡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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